올여름은 정말, 너무 더우니까.
나는 날것과 해조류 일체를 거의 먹지 못하고(또는 먹지 않고), 익힌 육류와 채소류를 좋아한다. 문장으로 적고 나면 단순한 분류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꽤 극단적인 편식가인 편이라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분들에게 30년째 꾸중을 들으며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회를 먹지 못한다는 말을 하면 꼭 듣곤 했던 “아이고,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하나 잃었네.”하는 식의 말은 넌덜머리가 난다. 나는 충분히 즐겁고 맛있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육류 중에선 특히 닭고기를 선호한다. 분명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맛은 있는데, 결국 또 찾게 되는 건 닭고기였다.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고, 대중적인 메뉴가 많아서 그런 것도 같다. 어릴 땐 동네 분식점에서 파는 닭강정을 즐겨 먹었고, 요즘처럼 열대야가 심할 땐 치킨과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식사로는 찜닭이나 삼계탕이 좋고, 출출할 땐 닭다리살 꼬치나 염통 꼬치, 또는 흔히 닭똥집이라고 부르는 닭 근위 볶음도 별미다. 닭이 낳은 달걀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식재료다.
이쯤 되면 ‘이제 닭발 차례인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닭발은 먹지 못한다. 별로 먹고 싶지 않게 생겼다. 아예 먹어본 적이 없으니 못 먹는 것인지, 안 먹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좌우지간 그렇게 되었다. 그래, 이제 마음껏 나를 욕 하시게나. 편식이 자랑이 아닌 시대에 나 같은 편식왕의 식성은 늘 그렇게 뭇매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다고 내가 닭발 먹을 줄 알고, 흥.
특히 여름만 되면 몸보신 타령을 하며 꼭 삼계탕을 찾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열치열’이란 말을 ‘피할 수 없는 더위를 견디는 최후의 처세술’ 정도로 여기는 탓에, 굳이 더운 여름날 뜨거운 음식을 찾아서 먹을 필요는 없다고 믿는 편이지만 나는 닭을 좋아하니까 삼계탕은 예외로 둔다. 특히 초복, 중복, 말복으로 이어지는 삼복(三伏) 날엔 삼계탕을 먹어줘야 속이 든든하다.
복날 기력을 보충하고 몸을 보하는 음식을 ‘복달임 음식’이라고 한다. 요즘은 삼계탕이나 장어구이, 추어탕, 소고기 등등 단백질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고기류를 복달임 음식으로 먹는다. 그중에서도 삼계탕은 예로부터 서민 중의 서민이 먹는 복달임 음식이었다. 왕의 수라상에 올랐던 복달임 음식으로는 민어찜(탕), 도미찜(탕), 그리고 보신탕 등이 있었고, 귀족 등 상류층에게도 삼계탕은 그다지 상급의 복달임 음식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요즘 삼계탕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리 서민의 음식이지만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개중에 가장 대중적인 복달임 음식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같은 닭인데도 치킨이나 찜닭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기력이 삼계탕만 먹으면 채워지는 건, 닭과 상생이 잘 맞는 식재료들 덕분이다. 닭과 마찬가지로 성질이 따뜻한 밤, 찹쌀, 대추, 마늘, 그리고 인삼까지 들어간다. 거기에 삼계탕의 충분한 칼로리는 당장 하루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에도 탁월하다. 기왕에 몸보신하려 먹는 음식인데, 다이어트를 고려해서야 되겠는가. 일단 든든히 먹고 볼 일이다.
이틀만 지나면 7월도 끝이 난다. 이례적으로 짧은 장마와 폭염의 시너지 효과는 아직 여름의 초입인데도 온몸의 기력을 바닥나게 만드는 것 같다. 게다가 올여름의 이 더위가 10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기사까지 종종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삼복이 아니라 오복, 육복 정도로 복날을 늘려야 마땅한 게 아닌가 싶다. 너무 더워서 개조차도 사람 곁에 엎드려 눕는다는 ‘복(伏)’날. 초복과 중복은 이미 지났고, 말복은 8월 16일이다. 너무 더워서 드러눕기로 복날을 정하자면 이미 나는 매일이 복날이었고, 복날일 예정이다. 복날 따지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복달임 음식을 챙겨 먹자. 물론 편식왕인 나는 민어찜이나 추어탕, 보신탕 말고, 삼계탕을 추천한다.
이 글은 칸투칸 8F에 최초 기고된 칼럼입니다.
http://8f.kantukan.co.kr/?p=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