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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Sep 13. 2018

저는 편식왕입니다.

프롤로그 겸 제 소개를 하죠.

내가 먹지 못하는 것


서른이 되도록 ‘편식쟁이’ 딱지를 떼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편식을 주제로 글을 쓴다니, 부모님도 친구도 애인도 기가 찬 듯 웃었다. 나는 내 편식에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생긴 것만 같아 득의양양 웃었고. 매거진 연재에 앞서 도대체 내가 뭘 못 먹길래(또는 안 먹길래) ‘편식왕’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게 되었는지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나는 결정적으로 ‘날 것’을 먹지 않는다. 아... 벌써부터 독자 분들의 탄식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맞다. 생선회, 새우회, 육회, 회가 올라간 초밥 등등. 입안에서 물컹이는 식감과 날 것 특유의 냄새 때문에 씹는 것조차 힘들다. 비슷한 이유로 젓갈류도 거의 먹지 않는다. 인생의 즐거움을 모른다거나, 그 고소한 회 맛을 모르면 어른이 아니라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은 여러분의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아무 불편함도 아쉬움도 없이 잘 지낸다.  


이어서 웬만한 내장 종류도 먹지 않는다. 순대에 곁들이는 간, 허파 등등은 물론이고 곱창, 막창, 대창도 먹지 않는다. 내게 육식은 살코기만으로 충분해서 굳이 내장까지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까닭이다. 아... 또다시 들리는 듯한 탄식. 나는 편식 덕분에 나를 향한 탄식에는 꽤 익숙하다. 얼마나 안타까울까. 마치 닭고기 마니아인 내가 치킨을 먹지 않는다는 누군갈 보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바다에서 나는 웬만한 것들, 해조류나 어패류 등등도 별로 즐기지는 않는다. 재첩, 바지락, 홍합 정도의 어패류는 먹지만 그보다 큰 것은 솔직히 두렵다. 물컹거리는 식감을 가진 것 중에서는 버섯이나 가지도 별로. 다행히 팽이버섯과 구운 송이버섯은 잘 먹는 편이다. 


과일이나 채소는 거의 다 먹는데 딱 하나, 바나나를 먹지 못한다. 그것도 과일 바나나만. 바나나맛 나는 과자나 우유 같은 건 잘 먹는다. 이건 안 먹는 게 아니라, 정말 못 먹는 거다. 내 기억엔 없지만 엄마 말로는, 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할 무렵(그러니까 거의 30년 전이다.) 바나나를 너무 잘 먹었단다.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초보 엄마였던 그녀는 잘 먹으니까 신이 나서 바나나를 계속 먹였는데, 하루는 내가 먹은 바나나를 다 게워낸 적이 있었다고. 아마 그 이후로 바나나에 대한 무슨 트라우마가 생긴 게 아닐까.  


편식을 강화한 두 가지 기질


자, 여기까지 읽고 처음 든 생각이 ‘도대체 이 사람은 그럼 뭘 먹고 산다는 거야.’라면 당신은 아주 정상적인 범주의 식성을 지닌 것이다. 내가 유별난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익힌 육류를 좋아한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고, 특히 면류를 좋아한다. 과일과 채소도 좋아하고, 소박한 밑반찬들도 잘 먹는다. 그래도 건강하고, 즐겁게 산다. 


이런 내 편식의 시작은 여느 어린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 맛보는 것에 대한 경계심, 이상한 생김새에 대한 거부감, 아직 ‘인생의 참맛’을 겪어보지 못한 일차원적 입맛. 다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나는 아직 서른이긴 하지만) 여태 편식이 심한 채로 살고 있는 건 ‘고집’‘애착’이라는 지독한 두 기질의 시너지 효과 때문인 것 같다. 


우선 나는 고집이 셌다. 흔히 말하는 ‘똥고집’보다도 더 했다. 내가 여섯 살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김해 삼계동의 어느 산 아래에 살았다. 그리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고, 나이 스물에 날 낳은 엄마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섯. 그래도 허구한 날 쑥국이니 시래깃국만 먹일 순 없으니, 가끔 고기나 생선구이 같은 걸로 단백질을 채우려 노력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 그날의 메인 메뉴는 재첩국이었다. 뽀얀 국물에 일일이 속을 발라낸 재첩살과 색 고운 부추. 


지금은 겨울이면 꼭 먹는 음식이지만, 여섯 살의 나는 재첩국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장남이란 이유로 유난히 엄하게 가정교육을 받았는데도 이놈의 고집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재첩국을 먹지 않겠다는 내 고집을 꺾어보려고 아버지는 속옷 차림인 나를 집 밖으로 쫓아내는 엄벌을 단행했지만, 여섯 살의 나는 눈발 나리는 밖에서 30분을 버텼다. 그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라 불러야 마땅할 정도였고 ‘죽어도 안 먹는다는 놈을 억지로 먹여 무엇하겠느냐’라는 부모님의 체념으로 재첩국 에피소드는 일단락될 수 있었다. 아, 물론 지독한 감기와 함께.


그런 고집과 더불어 내게는 ‘애착’이라는 기질이 있다. 뭔가 마음에 들면, 웬만해선 질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에 하나, 어떤 음식이 질리더라도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음식 중에서 대체재를 찾으려 하지, 새로운 음식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가령 내가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로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그 밖의 다른 고기들은 굳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미 내가 먹을 수 있는 고기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식도락을 양껏 즐기고 있다. 못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안 먹는 음식들의 대부분은 이런 이유로 먹지 않았다. 굳이 먹어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먹어봤고, 좋아하는 음식만으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이런 ‘고집’과 ‘애착’이라는 두 기질이 만나니 웬만해선 고칠 수 없는 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게다가 세월은 흘러 이제 내 나이 서른. 그동안에 새롭게 먹게 된 음식들도 물론 있지만(앞서 말한 재첩국처럼) 여전히 나는 편식왕이라 불릴 만하다.


편식으로부터 배운 것


내 편식의 역사를 일일이 말하는 건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다. 뭔가 잘못을 고백하는 것 같아서. 편식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잘못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기분은 그렇다. 


그런데 사람이란 신기하게도 그런 편식 따위를 하면서도 뭔가를 배우고 느낀다. ‘너가 편식을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걸 배우고 느꼈을 텐데’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우선은 내가 먹을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나는 음식으로부터 역사를 배우고, 위로를 얻고, 또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했다. (살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나면, 내가 쓸 수 있는 글도 늘어날 테니 그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그렇게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겼다. 어차피 먹는 음식이 거기서 거기인 편식왕이라, 기왕 먹을 거 좀 뜻깊게 먹어보자는 심산도 있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세상에 편식이나 하던 놈이 음식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별일이라면 별일이고, 적반하장이라면 또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누구나 뭐 하나쯤 못 먹거나 안 먹는 음식이 있지 않은가? (염치없이 ‘우리’라고 묶어서 죄송하다.) 글을 쓰면서 내가 든 생각은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순 없지만, 어떤 음식이든 잘 먹을 수는 있겠구나’였다. 그렇다면 ‘잘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미각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먹고, 음식에 대해 좀 더 알고 먹고, 그리운 풍경이나 기억을 곱씹으며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쓴 글들이 그러기 위한 나의 노력들이었다. 


프롤로그부터 얘기가 길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독자 분들이 알고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세세하게 내 소개를 했다. 다시 인사드린다. 직업은 작가. 라디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시집 <다시, 다 詩>를 펴냈다. 칸투칸의 웹진 8F와 논객닷컴에 칼럼을 기고한다. 로컬 매거진 <하트人부산>에 에세이를 정기 기고하고, 아무튼 글 쓸 기회는 마다하지 않는다. 나이는 서른. 그리고 편식이 심한, 편식왕 김경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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