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탈 땐, 말린 오징어.
'말린 오징어'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2년 전, 당시 우리 가족은 김해의 홍익 아파트라는 곳에 살았다. 경운산 자락 바로 아래에 있는 오래된 6층짜리 아파트였는데, 매정하게 깎아내린 비탈길에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이 킬링 포인트였다. (사전적 의미의 ‘킬링’이다. 특히 한여름엔 정말...) 게다가 우리 집은 제일 윗동의 제일 위층.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귀갓길에는 웬만한 하이킹에 준하는 체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부엌 한 편에 있던 주전부리 바구니는 화수분처럼 바닥을 보이는 날이 없었다. 고작 과자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려고 단지 입구에 있는 마트까지 다녀오는 건 도저히 엄두가 안 났으니까. 엄마는 외출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꼬박꼬박 먹을 것들을 사와 바구니에 쟁여두셨다. 보통 빵이나 떡, 과자가 대부분이었는데 한여름엔 캔 맥주와 마른안주들이 추가되곤 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면, 거실에 모여 일일드라마나 사극을 보면서 각자의 밤 간식을 즐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항상 있던 말린 오징어와 고추장, 마요네즈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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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맥주를 마시지는 못했지만 말린 오징어만큼은 부모님보다 더 신나게 질겅였다. 처음엔 매정하고 딱딱하게 굴다가도 씹으면 씹을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는 듯 부드러워지는 식감.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 고소하고 비릿한 오징어의 단물. 마치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고추장과 마요네즈의 콤비네이션. 무엇보다도 말린 오징어를 먹는 동안은 어찌나 시간이 금방 가버리던지. 아버지가 보시던 재미없는 사극도 말린 오징어와 함께라면 그런대로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즐긴 게 사극인지, 말린 오징어인진 몰라도. 내게 말린 오징어는 술안주가 아니라 시간의 안주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말린 오징어를 먹은 기억이 없다. 새내기 시절 눈만 마주치면 술집으로 향하던 때에도, 복학한 이후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 소위 ‘노땅’들끼리 한잔 할 때에도, 가끔 힘든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술 대신 슬픔을 나눠마시던 때에도 말린 오징어는 없었다. 뻔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싸구려 안주가 나오는 술집을 골라 다녔는데도 그곳에 말린 오징어는 없었고, 한때 유행했던 스몰 비어 가게에서 맥주를 마실 때에도 감자튀김만 그득그득했다. 그렇게 점점 말린 오징어에 대한 기억도 말라비틀어져 갈 즈음, 다시 반가운 그맛을 만난 건 아직 봄기운이 옅게 남아있던 5월이었다.
올해로 두 번째 라디오 다큐멘터리 작품의 취재를 위해 담당 PD인 국장님과 함께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겨우 1박 2일 일정에 인터뷰이는 무려 9명. 이틀 내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는 인터뷰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서울이 초행길은 아니었지만 그래 봤자 겨우 손에 꼽을 만큼 가본 탓에 지리에 밝지는 않았다. 장소와 이동 거리, 이동 방법을 확인하고 사전 질문지를 정리하고 녹음기를 정비하며 혼자 부산을 떠느라 새벽 6시 출발 기차였는데 피곤한 줄도 몰랐다.
뿌리의 집,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민대학교, 서울역, 경기도 하남시의 어느 공사현장... 강행군이 이어졌지만 다행히 일정이 꼬이거나 녹음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USB와 노트북, 녹음기를 보물 마냥 챙겨 들고 이튿날 저녁, 우리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서울역을 찾았다.
출처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820707&memberNo=183099
역 내의 한 수제비 가게에서 저녁을 든든히 먹고 기차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가려는데 국장님께서 “경빈 작가, 먼저 가있어~! 나도 금방 갈게!” 하시면서 어디론가 뛰어가셨다. 뭔가 놓친 것이 있으신가? 걱정이 되면서도 먼저 가있으라 하시니 괜찮겠지 싶어 일단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곧 기차가 들어오고, 국장님도 저기서 급히 달려오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국장님에 내게 건네신 건, 바로 안주용 말린 오징어였다.
“경빈 작가, 말린 오징어는 먹지?” 내 편식을 익히 알고 있는 분이라 감사하게도 어떤 음식을 권할 땐 꼭 이렇게 먼저 물어보신다. 다행히도 나는 말린 오징어를 먹는, 아니 아주 좋아하는 ‘편식왕’이다.
국장님은 일일이 몸통을 찢고, 다리를 떼어 몇 개를 집어 드시고는 곤한 잠에 드셨다. 나도 피곤이 몰려왔지만 여러모로 긴장한 탓인지 잠들기가 어려웠다. 정리할 것도 끝났고 KTX에 비치된 잡지를 정독했는데도, 부산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나는 하릴없이 말린 오징어를 질겅였다. 어느덧 해는 지고, 기차 안의 승객들은 서로 비슷한 모양의 피곤을 이불처럼 덮고서 조용했다. 기차가 달리는 소리와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어두운 풍경들을 보며 말린 오징어를 씹고 있자니, 그것도 나름 낭만적이었다. 그 식감, 그 맛, 그리고 잊고 지내던 12년 전 김해 홍익아파트, 그 집 거실에서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나는 새삼 말린 오징어에 반해버렸다.
갓 잡아 올린 오징어를 바로 할복해서 말린 것이 최고로 맛있다고는 한다. 오징어 특유의 적갈색이 진하고, 다리의 빨판들이 탱글탱글하고 오밀조밀하고 잘 붙어있는 것. 2,3일에 걸쳐 자연 건조한 뒤 다시 일주일 정도 숙성을 거쳐야 제대로 된 말린 오징어라고. 안타깝게도 내가 먹었던 편의점 표 말린 오징어들은 그리 최상급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말린 오징어의 진정한 완성은, 바로 먹는 사람의 ‘씹는 행위’에 있는 것 아닐까. 한두 번 씹어서는 아무리 최상급의 말린 오징어라도 제 맛을 내기 어렵다. 수십 번을 씹어야 한다. 건조되는 동안 딱딱하고 질겨진 오징어가 원래의 부드럽고 유연한 기억을 되살릴 때까지, 사람도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루할 것만 같던 시간도 금세 지나있다. 굳이 술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안주, 시간의 안주, 말린 오징어.
인터넷에서 '말린 오징어'를 검색하면 한자로 추포(秋脯)라는 단어가 나온다. '가을의 고기 포'라는 뜻. 추석이 지나고 정말 가을이 찾아온 것만 같다. 새삼스럽게도 오늘 밤엔 말린 오징어를 질겅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