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年 7月 28日의 기록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어릴 적부터 가까운 어른들에게서 눈치가 없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컸다. 나는 명절에 이모들이 엄마 몰래 쓰라며 준 용돈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전하는 답답한 조카였다. 편식하는 버릇을 고치려 파리채 손잡이로 종아리를 때리거나 귓바퀴가 얼얼할 만큼 추운 겨울에 대문 밖으로 쫓아내도 끝까지 입을 꾹 닫는 고집 센 아들이었다. 적당히 굽히며 사과해야 할 때를 눈치 없이 놓쳤고, 적당히 감추거나 능청을 떨며 융통성 있게 넘겨도 될 때를 기어코 넘길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나는 다른 많은 재능과 마찬가지로 눈치나 융통성은 타고나는 성향이라고 믿는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형제나 자매도 서로 딴판인 걸 보면 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당장 우리 가족만 해도 8살 터울의 남동생은 눈치도 융통성도 나보다 뛰어나다.
다행히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면서 눈치는 꽤 늘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는 분위기나 눈매와 입매에서 풍기는 은근한 기분 변화를 알아챌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물에 시작해 12년째 한 여자와 이어온 연애의 역사도 눈치 향상에 큰 몫을 했다. 서로를 다정한 눈빛으로 세심히 살피는 일이 연애의 첫걸음이니까.
그럼에도 다른 많은 재능과 마찬가지로 노력만으로 타고난 걸 이기는 건 무리다.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동생이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조율하는 걸 보면 역시 타고났구나 싶다. 아내 와 쌍둥이인 처제가(사실 한 번도 처제라고 불러본 적은 없다.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내며 그냥 이름을 부른다.) 시댁 어른들의 상황과 기분을 살피며 요령껏 대화를 이끌어간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절대 그 경지에 오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부단히 노력하면 앞으로도 조금씩 눈치가 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반면에 융통성은 서른을 넘길 때까지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렵기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거짓이 되고, 조금만 과하면 남을 속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원리원칙을 들이대며 칼같이 행동하지 않는 정도의 융통성은 쉽다. 치약을 짜는 방식, 휴지 걸이에 두루마리 휴지를 걸어두는 방향,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타이밍 같은 일들에 마음을 쓸 만큼 융통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융통성이 누군가를 속여 스스로를 부풀리는 데에 활용되면 상황이 좀 애매해진다. 특히 프리랜서 작가로 5년 넘게 생계를 꾸려오는 동안 애매한 융통성의 유혹은 늘 끊이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즈음부터 3년간 독학 재수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근무했었다. 수능이나 모의고사 국어 문제 해설과 학생들의 갖가지 고민 상담을 맡았다. 학생들에게 빈틈을 보여 신뢰를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철저하게 문제 해설을 준비했지만, 간혹 색다른 접근의 질문이 들어오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럴 때 적당히 둘러대며 시간을 끌거나 요령껏 대답해도 될 텐데, 나는 기어코 솔직하게 말하곤 했다. 선생님이 그런 질문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네가 나를 배려해준다면 지금 당장 정확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것보다, 잠시 뒤에 확실한 대답을 해줘도 되겠느냐고.
다행히 이 경우엔 오히려 학생들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후 학원 강사의 커리어를 대외적으로 마치 완벽히 준비된 전문가처럼 포장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대입 수능 국어 일타’라거나 ‘대입 자기소개서 수석 컨설턴트’, ‘논술 자문위원’ 같은 그럴듯한 타이틀 말이다. 분명 학생들을 잘 가르친 것도 맞고 학생들이 나를 잘 따른 것도, 당시 그 동네의 학원가에서 유일하게 자기소개서 개요를 작성하는 방식을 도입해 좋은 결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사실보다 부풀려 포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건 역시 민망한 일이었다. 담백하게 일타, 수석, 자문위원 같은 말들은 좀 빼도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이 정도 부풀리기는 도의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이지만 융통성이랍시고 사실을 숨기거나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건 위험하다. 어느 대학의 몇 개월짜리 교육과정을 수료해놓고서 그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하거나, 제품의 기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허위 광고 카피를 쓰는 일들은 엄연히 범법 행위다. 그런 점에선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방식의 삶이야말로 가장 융통성 있는 삶이겠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삶이란 늘 과정에 머무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걸. 융통성이라는 도구를 핑계 삼아 기회주의와 결과 만능주의, 난무하는 반칙을 일삼아선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독야청청, 저 혼자 깨끗하고 고고한 놈인 듯 글을 적지만 사실 나도 융통성을 핑계 삼아 스스로를 그럴듯한 사람으로 포장해 소소한 이득을 챙기며 살았다. 아주 잘 아는 분야가 아닌데도 어쭙잖은 지식으로 다 아는 척한 적도 있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찝찝한 마음이 들 때면 여지없이 융통성이라는 든든한 도구를 찾게 됐다. 잠긴 문을 여는 정확한 열쇠는 아니지만, 어떤 잠긴 문이든 적당히 상처 내며 열 수 있는 장도리 같달까. 그렇게 인생의 문들을 열어젖히며 살다가 돌아보니 온통 고장 나고 부서진 문투성이였다.
고민 끝에 서른둘인 지금에야 나름의 방식으로 융통성을 이해하게 됐다. 뭐랄까, 도의적인 차원에서의 융통성은 소액 대출과 닮았다. 거창한 자격 요건이 없어도 일단은 저질러 볼 수 있다. 내 지갑에 10만 원뿐이어도 필요에 따라 20만 원, 30만 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라면 그건 대출이 아니라 도둑질일 테다. 대출은 빌려 쓴 돈이니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끝이 난다. 스스로를 융통성 있게, 사실보다 부풀려 그럴듯하게 이야기했으면 이제 그에 걸맞은 ‘그럴듯한 사람’이 되면 된다. 한 말에 책임을 지며 ‘융통성의 빚’을 갚으면 된다.
그러니까 융통성이라는 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남들 모르게 스스로 하는 약속이나 다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 내 원고의 고료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새삼스럽게 다시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배운 만큼 보인다더니 이전에 자랑스럽게 여겼던 문장들이 못나 보여 속상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그럴듯한 문장을 쓰는 작가처럼 보이려 발휘했던 융통성의 빚을 이제야 갚아내는 중이니까. 갚는 동안 나는 점점 더 그럴듯한 문장을 쓰는 작가가 될 테니까. 융통성은 이런 식이어야 발휘할 맛이 난다.
나는 주로 타인을 위해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위해 융통성을 발휘할 때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눈치와 융통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회생활의 미덕인 셈이다. 남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눈치와 스스로를 조금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융통성. 그런 눈치와 융통성이라면 얼마든지 충분히 갖춘 사람이고 싶다. 정말로 그럴듯한 사람이고 싶다.
-
2020年 7月 28日, 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