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年 7月 29日의 기록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구독자 분들께 이메일로 연재했던
일간에세이를 브런치에 공개 연재합니다.
1년 전 이맘때의 제 기록들을 통해
1년 전 독자분들의 나날을
되짚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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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잠드는 사람’은 아내다. '졸린다. 잠을 자야겠다. 베개를 베고 누워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아내는 이 3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과장 없이 3초 안에 잠들 수 있는 사람이다. 하루는 산송장처럼 누운 아내의 안경을 벗겨 침대 머리맡에 두면서 “오늘 진짜 피곤했다. 그치?” 하고 말을 걸었는데, 대답 대신 곤한 숨소리만 들려온 적도 있었다. 나를 놀리는 건가 싶어 감긴 눈두덩이 위에 검지와 중지를 갖다 댄 적도 많았다. 열에 아홉은 이미 숙면 상태였고, 그나마 하나 정도 선잠을 깨곤 했다.
반면에 나는 잠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대학 졸업 전엔 생각이 많아 그랬고, 요즘은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보느라 그렇다. 너무 피곤한 날엔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지곤 하는데, 그럴 땐 다음 날 아침에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내 코골이 때문에 거실에 나가서 자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내가 먼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아내는 나보다 일찍 잠들기 위해 노력(이랄 게 필요한가? 어쨌든.)을 한다. 둘 다 곧바로 잠들지 않는 평소에는 주로 잠들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 전날 인상 깊었던 장면, 몇 년 전의 행복했던 순간, 낮에 봤는데도 또 보고 싶은 조카들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부는 부부가 되기 전부터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낄낄대기를 좋아했다. 카페에서나 길거리에서도 자주 그랬지만 아무래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낄낄대기가 최고다. 환한 대낮이었다면 시시했을 이야기들도 어두운 방에선 희한할 정도로 우습고 극적이다. 광대가 얼얼하고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낄낄대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잠드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꿈 없는 깊은 잠을 자고 알람 없이도 개운하게 눈을 뜬다.
서로의 숙면을 위한 최적의 순간, 그걸 ‘잠때’라고 불러도 된다면 부부의 잠때가 잘 맞는 건 꽤 중요한 일이다. 끼니는 어쩌다 걸러도 잠은 매일 자니까. 우리 부부 잠때의 순서가 아내 먼저인 것도 좋다. 나의 잠든 얼굴은 꽤 볼썽사납지만 아내의 잠든 얼굴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잠든 모습을 보다가 잠들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꿈에 관해서도 할 얘기가 많다. 길몽, 흉몽, 예지몽, 자각몽, 태몽 등 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지난 12년간 지켜본 바 아내가 꾸는 꿈은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사서 고생하는 ‘걱정 꿈’. 아내는 현실에서의 걱정거리를 닳고 닳도록 곱씹다가 기어코 꿈속에까지 챙겨 간다. 꿈속에서 최악의 수를 따라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잠에서 깬다. 그런 꿈을 꿀 때 아내는 끙끙 앓거나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아침에는 얼굴이 유난히 수척해서 마치 새벽 내내 추격전이라도 한 사람 같다.
나는 흔히 말하는 개꿈을 자주 꾼다. 내가 말하는 개꿈이란 단순히 현실성이 없는 것을 넘어 장면이나 서사가 뒤죽박죽인 꿈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교실에서 선생님께 대들던 중이었는데, 뒤를 돌면 느닷없이 군인이 되어 초소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는 식이다. 가끔 길몽을 닮은 꿈을 꾸기도 한다. 아기의 똥 기저귀를 발로 밟는다거나 큰 계곡에 고래가 유영하는 걸 본다거나. 물론 로또를 사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그래도 유의미한 꿈 하나를 꼽자면 우리 부부가 지금의 신혼집에 입주한 첫날 꾼 꿈이다. 잠결에 “키 작은 할매를 만나면 밟아야 된다. 꼭 밟아라!”하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떴는데 안방 문 앞에 웬 할머니가 서 있었다. 내 허리께밖에 되지 않는 키에 몸통에는 검은 옷을 두르고 머리는 백발이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귀신인가. 두려운 마음에 눈을 감으려던 찰나,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나도 모르게 냅다 달려들어 할머니를 밟았다. 정신없이 밟고 보니 그 자리엔 검은 옷만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게 꿈이라는 것도 모른 채 안도했다. 이 꿈이 유의미한 이유는 우선 서사가 그럴듯하게 깔끔하고, 무탈하게 지나온 우리 부부의 신혼이 그 꿈 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꼭 맞다. 마음만 먹으면 나의 모든 꿈을 길몽으로 칠 수도 있겠다. 물론 아내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꿈은 일종의 백신 같다. 최악의 수를 꿈에서 미리 경험하고 현실로 돌아와 면역을 갖추는 것이다. 나는 아내의 꿈 없는 잠이 좋다.
지금은 5살, 3살인 조카들이 100일이나 첫돌을 맞이했을 때쯤 나는 종종 그 아기들을 품에 안고 재웠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작고 체온이라기엔 좀 더 따뜻한 존재들. ‘아기 냄새’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냄새가 내 티셔츠와 목덜미 주변에 배는 게 참 좋았다. 아기들은 칭얼대다가도 나름의 조건이 충족되면 망설임 없이 잠들었다. (그런 점에선 서른둘 아내와도 비슷했다.) 아기들도 꿈을 꾸는지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기도 하고 배시시 웃기도 하고, 뭘 먹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침을 삼키기도 했다. 잠든 아기를 안고 있으면 그 순한 잠과 무구한 꿈을 품을 수 있어 행복했다.
잠과 꿈은 어른이 되어도 비교적 쉽게 누릴 수 있지만 품만은 그렇지 않다. 의심 없이 안길 품을 찾기는 어렵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내 품을 내어주는 것은 두렵다. 아무리 사랑해도 밤새 서로의 품에 안긴 채로 잠드는 건 영 불편하다. 나의 코골이나 볼썽사나운 얼굴, 자는 동안 흘리는 땀냄새 같은 것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한 5분이나 10분쯤 서로를 품고 있다가 각자 가장 편한 자세를 찾는다. 그저 5분이나 10분쯤 마음 놓고 안길 수 있는 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다.
품을 잃는 일은 온도를 잃는 일이다. 온도를 잃으면 온전히 저 혼자서 따뜻해져야 한다. 36도 언저리의 체온만으로 삶이 다정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37도, 38도 열을 내면 열병이 나고 만다. 사람은 체온과 체온이 만났을 때 병치레 없는 훈훈함, 아직 괜찮다는 위안을 얻는다. 백 마디 말보다 묵묵한 포옹이 더 많은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이제는 잠들었을 때가 아니면 가만히 안겨 있지 않으려는 조카들이지만, 가끔 제 기분이 좋을 땐 사랑한다며 나를 안아주곤 한다. 조카들의 팔은 내 몸통을 겨우 두를 만큼 짧다. 그 팔에 안긴 몇 초의 순간이 뒤척였던 몇 시간의 잠보다 편하게 느껴진다. 잠에서 깨고 나면 금세 잊히는 꿈처럼 우리의 고단한 삶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꺼이 내어줄 품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잠과 꿈과 품을 모두 누리는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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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年 7月 29日, 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