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맞지 못한 날들
- 칠칠
나는 혼자서도 밥을 먹고
영화를 볼 줄 압니다
다 같이 스물이 낯설었던 탓에
우르르 몰려다녔던 봄
그 시절에 한데 모여 핀 벚꽃들은
실은 저마다 따로 졌고요
당신은 혼자서 길을 걷다가도
발에 치이는 꽃잎들을 살필 줄 압니다
혼자서도 잘 해내던 둘이 만나
당신은 내 옷에 튄 벌건 국물을 닦아주고
나는 가끔 당신의 눈곱을 떼어주면서
눈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합니다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은
틈틈이 외롭고 구석구석 헐거운데
사랑이란 게 틈틈이 구석구석
그렇게 하는 거였습니다
칠칠맞지 못한 걸 알아버렸으니
다시 혼자되긴 글렀습니다
아내는 차승원, 소지섭, 유연석, 공유 등등의 배우들을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그들과 나는 아주 다르다. 나는 그들처럼 키가 크지도 않고, 얼굴이 작지도 않고, 작은 얼굴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지도 않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사랑한다. (가끔이지만) 나에게 잘생겼다는 말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지만, 잘생겼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아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거울이 있고,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눈이 있다.
나는 딱히 정해둔 이상형의 조건도 없고, 팬을 자처할 만큼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다. 작품 속 배역과 예능에서 언뜻 비치는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보며 호감을 품는 정도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배우 김태리가 좋아졌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예능 <효리네 민박>을 보고 아이유가 좋아졌고,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보고 손예진이 참 예쁘고 애틋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예전부터 이영애를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이영애가 나의 이상형이었던 것도 같다.
솔직히 말해 내 눈에 아내는 더없이 예쁘다. 여기는 조금 아쉽지만... 하는 구석 없이 온통 다 예뻐서, 외모로 보면 우리 부부는 마치 미녀와 야수 또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내는 이영애가 아니다. 이영애와 닮은 구석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내가 예쁘고 사랑스럽다. 나는 아내의 이상형인 배우들과 닮은 구석이 없고, 아내도 나의 이상형인 이영애와 닮지 않았는데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이상형이란 ‘이상적인 어떤 형태’라기보다는 ‘이상적이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형태’인 것이 아닐까. 소설가 황정은의 장편 소설 『백의 그림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 황정은, 『백의 그림자』(민음사)
나는 이 장면이 이상형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 혼자 품고 있던 이상형의 조건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속되게 말해 콩깍지가 씌면 원래 품고 있던 이상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람은 일종의 다면체이기 때문에 한 가지 특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특징들을 동시에 지니기도 한다. 근면함과 나태함, 대범함과 소심함, 냉정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나는 청소할 땐 꼼꼼한 편인데, 이상하게도 음식을 먹을 땐 칠칠맞지 못하게 자주 흘리거나 옷에 묻힌다. 여름에 밀면을 먹으면 여지없이 티셔츠에 국물이나 양념 자국이 남는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가끔 어깨 뒤쪽에 국물이 튀어 있을 때도 있다.
이상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지만 칠칠맞지 못한 걸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그런데도 아내는 나의 칠칠맞지 못한 구석까지 너그럽게 봐준다. 나도 피곤할 때면 눈꼬리에 맺히는 아내의 눈곱이 귀엽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눈곱이란 지저분할 수밖에 없는데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마음이 그렇게 너그럽고 온화해진다. 그런 점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일은 상대방의 칠칠맞지 못한 구석과 헐거운 틈새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며, 나의 이상형과 정반대인 점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나 사소해서 일상이 잘게 반짝이는 일이다.
아내를 만나 내가 얼마나 칠칠맞지 못한 사람인지 더욱 실감하게 됐다. 혼자서 잘 해내는 것보다 함께 조금 서툰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남은 삶 동안 다시 혼자되긴 글렀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것마저도 참 다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