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기억력이 좋다. 특히 나의 치부나 자신이 서운했던 일들에 관한 기억력이 유난히 좋다. 칼국수 먹다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콧구멍으로 면발이 나왔던 장면, 중학생 때 사귀었던 친구와 내가 서로 서방님 마누라 했던 것, 깜빡하고 변기 물을 내리지 않은 걸 아내가 발견했던 순간까지. 아, 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요즘 아내는 내 노년에 관한 망할 예언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 망할 예언은 작년 여름 처제와 들렀던 서면의 한 사주 집에서 시작됐다. 서면에는 사주, 타로, 관상 등을 보는 단칸이 줄줄이 들어선 골목이 있다. 처제의 지인이 추천한 곳이 있다고 해서 평일 낮에 굳이 거길 찾아간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였고, 처제는 조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시간이 남으니 재미 삼아 들렀는데, 지금은 그 망할 예언 외에 다른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받아 든 괴팍한 인상의 아줌마는 대뜸 내게 이렇게 말했다.
“와이프랑 둘이 알콩달콩 잘 산다. 근데 나이 들어서 조심해야겠네.
육십 넘으면 젊은 러시아 여자랑 바람이 날 수도 있어.”
망할 예언은 아내의 장기 기억 저장소에 입력되었다. 그제도 아내는 잠자리에 누워 나를 닦달했다. 너는 육십 넘으면 젊은 러시아 여자랑 바람날 것 아니냐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며. 물론 농담이지만 들을 때마다 그 괴팍한 아줌마가 원망스럽다. 도대체 그런 시나리오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신묘한 기운 덕에 그런 장면이 보였다고 해도, 굳이 안 해도 되는 말 아닌가.
그 망할 예언만 빼면 어딜 가나 나의 점괘는 무난한 편이었다. 동네 24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휴학생 때, 수박과 쌀을 배달한 점집에선 내 얼굴을 보고 “잘 살겠네. 살던 대로 열심히 살면 잘 살겠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본 타로점에선 둘의 궁합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했다. 벡스코 근처 철학관에선 육체노동은 절대 하지 말고, 교육업이나 부동산 쪽으로 성공할 거랬다. 글 쓰는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고 했더니 난색을 보이다가 육십 넘을 때쯤 아주 유명해질 거라고도 했다. 예언에 따라 앞으로의 내 삶을 종합하면 ‘살던 대로 잘 살다가 교육업이나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고, 육십 넘으면 젊은 러시아 여자와 바람이 난 유명 작가가 된다.’ 정도 되겠다.
그런 예언들은 마치 베란다 구석에 던져둔 공구 상자 같아서, 평소엔 까맣게 잊고 살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보게 됐다. 10개월 정도 택배 일을 하던 때에 아내는 “그 철학관 아저씨가 육체노동은 피하랬는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보겠다고 덤비던 때에는 “부동산 일을 해야 큰돈 번다고 했어.”라며 마음을 다잡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을 땐 살던 대로 열심히 살면 잘될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글 써서 생계를 꾸리는 게 막막할 땐 육십 넘어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는 철학관 아저씨 말이 떠올랐는데, 이상하게도 그것만은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작가의 삶을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마다 힘이 된 말은 따로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서 만난 L형은 나를 Bro라고 부른다. (나는 낯간지러워서 그냥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대단한 괴짜였다. 매번 혼나면서도 이불과 수건의 각을 잡을 줄 몰랐고, 보급품 상자 속지에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형이었다. L형 때문에 소대원이 단체 얼차려를 받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틀에 가두려고 할수록 더 유연하게 빈틈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었고, 소대원 모두 그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6주의 훈련이 끝난 뒤 서로 다른 지역으로 자대 배치되어 우리 인연도 끝일 줄 알았는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서로 글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L형은 소설을 쓰고 나는 시와 에세이를 쓴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고 꽤 솔직한 합평을 주고받는다.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유형의 인간인데 각자의 문장에는 묘한 접점이 있다. 그의 소설에는 내가 배우고 싶은, 아니 빼앗고 싶은 문장과 표현들이 많다. 어쩌면 그에게도 나의 부족한 글이 그렇게 읽혔던 걸까. 글쓰기가 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갑갑해서 하소연할 때면 L형은 확신에 찬 어투로 내게 말했다.
너는 결국 등단하게 될 거라고, 너의 글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마치 거북이처럼 강한 맷집으로 움직인다고, 느리지만 선이 길고 굵다고, 매일 글을 쓰는 지속력은 너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고마운 위로, 든든한 응원이었던 그 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정한 예언이 되어갔다. 베란다의 먼지 쌓인 공구 상자가 아니라 식탁 위의 티슈나 끼니마다 손에 드는 수저처럼, 자주 곱씹는 예언이었다. L형에게 신묘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나는 그걸 예언이라고 믿는다. 그가 나에게 그 말들을 건넬 때, 내가 스스로를 믿는 것보다 더 강한 확신을 담아줬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를 더 믿는 사람을 만나면 함부로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불길한 예언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원하는 예언을 향해 걷는 인간이 된다. 거짓말처럼 없던 용기가 생긴다.
누군가에게 진심과 확신을 담아 잘될 거라는 말을 건넬 때, 그가 자신을 믿는 것보다 더 큰 믿음으로 응원할 때. 그럴 때 우리에게 어떤 신묘함이 생기는 건지도 모른다. 말과 마음에 효험이 깃들어서 상대방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내와 날마다 오늘도 행복한 일은 있었다고, 내일도 행복할 거라고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친구의 행운과 부모의 건강을 기원하는 말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다정한 예언을 일삼는 중인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거나 당장 해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짚어주기 전에, 우선 잘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눈에 빤히 보이는 어려움과 두려움 대신, 그 너머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L형의 말을 발판 삼는 나처럼, 누군가에게 나도 다정한 예언을 전하고 싶다. 언제까지고 잊히지 않는 예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