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선명한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내는 법

by 김경빈

우리 부부는 서로의 본가가 차로 10분 거리인 한 동네 주민이어서 명절 일정이 꽤 간소한 편이다. 명절 전날에 나의 처가댁에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오후에 아내의 시댁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결혼 전부터 이어진 루틴이었다. 결혼 직후 맞이한 설에도 초저녁쯤 처가댁에 들렀는데, 마침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우리 부부는 추억이 책갈피처럼 군데군데 꽂혀 있는 김해 거리를 활보했다.


거리마다 자꾸만 시간이 되감겼다. 어두웠던 나비 공원은 환한 광장으로 바뀌었고 아내와 함께 일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자리에는 왁싱 전문점이 들어섰다. 만남의 메카였던 ‘롯데리아 사거리’의 롯데리아는 자리를 옮겼고 휑하던 삼성아파트 옆 부지에는 새 빌딩들이 올라섰다. 우리는 걸음마다 과거를 소환하기 바빴다. 이미 사라진 과거가 현재에 덧씌워져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왕 걷는 김에 고등학교에도 가보기로 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했다. 급식소를 리모델링한 듯했고 매점 자리는 공사 중이었다. 중간 통로로 이어진 두 동의 건물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스탠드 계단을 덮고 있던 등나무 덩굴 지붕이 튼튼한 아크릴 지붕으로 교체된 것 말고는 그대로였다. 이미 해는 넘어가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어둑했지만 암순응을 기다리지 않고도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다. 키가 다른 철봉이 줄지어 있던 자리, 구멍 난 그물망이 늘어진 축구 골대, 농구공 튀는 소리가 명랑하던 체육관까지. 눈을 감아도 그 장면들이 선명해서, 우리는 어둠을 앞에 두고 색색의 추억들을 이야기했다. 처가댁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왕복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산책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는 거의 2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시간마저도 금세 지나버린 기분이었다.


대학교 CC였던 덕에 캠퍼스를 거닐 때도 시간은 자주 되감긴다. 요즘의 캠퍼스는 스무 살 때와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육중한 정문의 문주가 철거되고,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던 부지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캠퍼스 안팎을 가르던 벽돌담은 시야가 트인 철제 울타리로 바뀌었다. 건물 안전진단 D등급 경고문이 붙어있던 ROTC 강의동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꽤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캠퍼스를 거닐면서 우리는 지금은 사라진 문주와 유채꽃밭을 본다. 새 건물들이 들어선 자리, 그 터의 휑뎅그렁함을 본다. 13년 전 성년의 날에 중앙도서관 앞 분수대에 뛰어들던 막무가내 동기의 객기를 본다. 지금은 없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면서 걷는다.


오랜 세월이 관계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우리는 11년 만에 부부가 되었지만, 어떤 연인은 단 몇 개월 만에 부부가 되고도 평생을 잘 지낸다. 어떤 친구는 10년을 가까이 지내도 하루아침에 절교하지만, 어떤 친구는 10년 만에 다시 만나도 어제처럼 반갑다. 세월에만 의지하는 관계야말로 가장 허망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한 관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현실이 아무리 바뀌어도 기억하는 한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많은 관계일수록 심심하고 삭막한 현실에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어떤 추억은 세월이 지나면서 보정되고 편집되어 마치 리메이크된 영화처럼 둘 사이에서 꾸준히 재개봉된다. 누군가와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하루를 평생처럼 살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는 스물에 처음 만났으니, 마흔을 넘기면 ‘함께한 세월’이 ‘서로를 모르고 살았던 세월을’ 넘기게 된다. 그날이 오면 서로 존재의 농도가 서로 엇비슷해질 것 같다. ‘나는 너, 너는 나’ 그런 거 말고 그냥 ‘우리’가 될 것 같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하루를 평생처럼 웃고 떠들 수 있는. 눈이 멀더라도 선명하게 추억을 묘사할 수 있는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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