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긴 두렵고 외면하긴 부끄러운

좋은 실패와 현명한 포기

by 김경빈

직접 만든 그래놀라의 고소한 맛, 헐값에 사들인 질 좋은 중고 제품, 자주 오가는 골목의 담장 너머 골든 리트리버,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서 아내와 함께 하는 주말의 낮잠 등등. 나는 이렇게 자질구레한 행복이 좋다. 이런 종류의 행복들은 반짝이 풀처럼 일상의 곳곳에 묻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발견할 수 있다. 가깝고 흔하고 질리지 않는 행복이다.


물론 현실이 겨우 그 정도의 행복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빠듯한 가계부와 아파트 대출금과 넉넉하지 않은 소득까지 모두 현실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 소릴 들어도, 테슬라니 삼성전자니 동학개미운동이니 하는 말들이 시끄러워도, 큰맘 먹고 투자해볼 종잣돈이 없는 것도 현실. 그러다 벌써 나이가 서른셋인데, 우리 부모님은 노후 준비 잘하고 계시려나, 여태 길러주신 빚을 조금이나마 돈으로 갚아드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막막해지는 것도 현실, 현실, 현실…. 어쩌면 현실이란 맛있는 행복보다 맛없는 고민과 좌절과 우울이 훨씬 많은 비스킷 상자가 아닐까. 그래서 행복은 귀하고, 귀한 만큼 값진 게 아닐까.


우리 집 옆으로 유명 브랜드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2년 전 4억이던 분양가가 지금은 매매 기준 10억까지 올랐단다. 자세한 속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앉은자리에서 6억을 벌었네. 부럽다….’ 하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직접 만든 그래놀라의 맛이나 아내와 함께 하는 주말의 낮잠에 비해 6억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행복처럼 느껴진다. 6억이면 치킨이 몇 마리냐, 하는 농담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걸 겨우 치킨값으로 쓸 수는 없다. 6억이면 아파트 대출금을 한방에 갚고, 튼튼하고 좋은 차도 한 대 뽑고, 3천만 원 정도는 주식에 투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명품 가방을 하나씩 선물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고도 충분한 금액이 남아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6억이란 굉장히 큰돈이다. 지난 7년간 나의 모든 글밥을 모아도 6억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쓸쓸해진다. 수백 편의 글을 썼는데도 수중에 돈이 몇 푼 없다는 사실이 마치 헛살았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주체적인 삶? 작가의 명예? 무엇이건 있기야 하겠지. 그럼 그 삶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일까. 몇백? 몇천?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말만은 제발. 100억을 줘도 맞바꿀 수 없는 삶이란 결국 김밥 한 줄과도 맞바꿀 수 없는 삶과 비슷하다.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니까. 애초에 부자가 목표였다면 작가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했겠지만.


이런 행복과 저런 걱정들이 모두 현실이다. 똑바로 마주하기엔 두렵고 아주 외면하기엔 부끄럽다. 그럴 땐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한다. 노래를 들으면서 집안일을 하고, 뜨거운 물로 꽤 오래 샤워를 한다. 빨래를 하고 책을 읽고, 그래도 마음이 갑갑하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낮잠을 잔다.


그런 식으로 두려운 현실과 거리 두는 일은 꽤 유용하다. 괜히 용감해져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시력도 좋아지고 시야도 넓어져서 빡빡한 현실의 다행스러운 틈바구니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덩치는 커도 존재는 얄팍해서, 작은 틈으로도 쉽게 절망을 빠져나간다. 물론 그 작은 틈으로 흘러드는 더 작은 행복에도 기뻐할 줄 안다. 그건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거리 두기도 별 효과가 없다. 글은 돈으로 쓰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돈이 궁하니 글 쓰는 원동력이 줄어든다. ‘아무래도 나는 작가로 성공할 인간은 아닌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면 거의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셈이다. 예전엔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으로 막다른 골목의 담벼락을 넘어 또 다른 골목을 걸었는데, 이젠 종종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된다. 특기가 되지 못한 취미는 혼자만의 것이듯, 직업이 되지 못한 적성도 그런 거 아닐까. 나의 글쓰기가 오직 나만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여기서 관두면 나는 실패한 걸까, 포기한 걸까. 둘 다인가. 며칠 내내 그런 상념에 시달리다가 오늘 인스타그램에서 만화가 재수(@jessoo) 님의 글을 읽었다. ‘실패와 포기는 다르다.’로 시작하는 글이었는데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었다. 찔리긴 찔렸는데 아프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 그런 점에선 정곡이 아니라 혈 자리에 놓은 침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실패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포기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실패를 하고 나서 포기를 했다고 여기게 되거나
포기를 하고 나서 실패를 했다고 여기게 되면
실패와 포기가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실패와 포기를 멀리 두어야 한다.


이쯤에서 나는 만약 글쓰기를 관둔다고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확신했다. 실패보다 포기가 더 나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실패는 포기가 아니고, 포기도 실패가 아니다. 둘은 다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재수 님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때때로 좋은 실패를 모으기 위해서는
현명한 포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실패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싶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명한 포기도 마찬가지다. 우직한 끈기는 그 자체로 분명 가치롭지만 현실에선 종종 미련스럽거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의 우직한 글쓰기도 그렇다. 그 자체로는 멋지고 값진 일이겠으나 겨우 요 정도 돈벌이를 하며 글만 쓰고 앉아 있을 순 없다. 6억까진 아니어도 가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현명한 포기로 좋은 실패를 그러모을 수 있다면.

그렇다곤 해도 당장 내일부터 절필을 선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남은 1월의 연재를 성실히 이어가야 하고, 2월부터 시작되는 에세이 클래스를 운영해야 하고, 8월에 출간 예정인 에세이의 원고를 차곡차곡 쌓아둬야 한다. 결국 나의 글쓰기는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현명한 포기가 더욱 두렵지 않다. 어떤 삶이든 결국 나의 글감이 될 것이므로. 작가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병에 걸린 자들이므로.


후- 심호흡을 하고 현실을 마주한다. 두려워도 거기 있고 외면해도 거기 있는 현실을. 더 잘살아 보려는 마음이 부끄럽지 않도록, 현실 속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2021. 1. 18.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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