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모두 너였어, 그건 모두 나였어
아내와 나는 닮은 점도 다른 점도 많다. 성향은 많이 닮았는데 외모는 아주 다른 편이다. 골격이나 피부색, 이목구비와 팔다리까지 모두 다르다. 특히 머리 크기와 두상에 관해선 할 말이 많다.
나는 군 복무 당시 58호 사이즈의 전투모를 썼다. 머리가 덥수룩해진 말년에는 59호 사이즈 전역모를 준비해야 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남자 평균 머리둘레가 57cm 내외라고 하니 평균보다 큰 편이기는 하다. 그렇다곤 해도 머리가 너무 커서 길을 걷던 행인이 깜짝 놀란다거나, 사진에 대두 필터를 씌웠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내와 처제, 장인어른까지 처가댁 식구들이 다들 대단한 소두라 그 사이에 있을 때면 나는 아주 대단한 대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장인어른은 가끔 나의 큰 머리를 두고 “아이고, 곰거리 많이 나오겠네.”라며 농담을 하신다. 곰거리라뇨, 장인어른. 머리가 작고 골반이 발달한 아내를 처음 본 저희 아버지가 “빈아, 니 여자 친구는 타조 같네.”라고 했다는 걸 아시는지요. 그나마 그건 나름 칭찬이었는데, 곰거리는 칭찬도 아니잖습니까. 섭섭합니다, 정말.
우리 부부는 두상도 서로 다르다. 나는 가로와 세로 길이가 비슷한 단두형에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사선으로 깎아지른 절벽 형상의 두상이다. 아내는 그 절벽에다 손바닥을 얹고서는 “디저트 정도는 올려둘 수 있겠는데?”라며 너스레를 떤다. 과연 사람 놀리는 솜씨가 부전여전이다. 나와 달리 아내는 동그랗고 반듯한 두상인데 특이하게도 정수리 가운데에 야트막하게 오목한 부분이 있다. 손으로 살살 짚어보면 마치 사과나 감의 꼭지 부분 같기도 하고, 골이 깊지 않은 통통한 하트 모양 같기도 하다. 쌍둥이인 처제도 두상이 비슷하다고 했다.
서로의 두상이 그렇다는 걸 만난 지 꽤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연애를 11년이나 했는데도 8년인가 9년 차쯤에야 서로의 두상을 세심하게 짚어본 것이다. 손으로 이마를 짚은 적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두상을 가늠해볼 일은 없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를 넘어 ‘평생 함께할 반려자’가 되면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살피게 됐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내는 나의 두상과 안경 코받침 근처 도드라진 점, 각진 하관을 손으로 더듬으면 눈을 가리고도 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아내의 두상이면 충분할 것 같다. 정말이지 그런 두상은 들어본 적도 직접 만져본 적도 없으니까.
그런데 두상이란 -몸 뒷면의 다른 부위들과 마찬가지로- 내 몸이면서도 내 눈으로 온전히 확인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사람이란 혼자서는 혼자의 몫만큼도 살아내기 어려운 존재가 아닐까. 구태여 3D 입체 사진을 찍지 않는 이상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두상의 앞이나 옆태 정도다. 누군가가 자신의 두상을 본떠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스물여섯, 대학생일 때 조소 학원에서 두상 모델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급이 꽤 높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멍하니 앉아 들을 노래 리스트를 미리 정리하고 이어폰을 챙겨 명륜역 근처 학원으로 갔다. 건물 2층의 학원에 들어서자 내가 앉게 될 회전의자를 중심으로 빙 둘러 학생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덕지덕지 조소용 찰흙이 굳어있는 바닥과 벽은 지저분하다기보다 의외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시간이 되자 8명의 학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조소 준비를 했다. 나도 가운데 회전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굳은 자세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학생들은 찰흙을 턱턱 집어 주무르고 문지르고 깎아내며 내 얼굴을 빚었다. 내가 확인하지 못하는 나의 어떤 부분을 8명의 학생들이 재현해내려 집중하는 모습. 그걸 목격하는 건 굉장히 묘한 경험이었다. 30분인가 45분인가에 한 번씩 종이 치면 의자를 돌려 각도를 바꿔 앉았는데 그때마다 서로 조금씩 다르게 빚어지는 내 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호박이나 바람 빠진 축구공 같던 찰흙 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를 갖춰갔다. 이마와 눈썹 뼈, 눈과 코, 광대에서 귀로 이어지는 선들이 학생들의 손놀림을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나는 8개의 두상, 당연히 나를 닮았을 그 두상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렇게 생겼구나. 저들이 보는 나는 저런 모습이구나.
오후 2시쯤 시작한 두상 모델 일은 저녁 7시쯤 끝이 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8개의 두상 중 완성된 것은 없었다. 조금 일그러지거나 귀퉁이가 뭉개진 것도 있었고, 거의 완성 단계인데 이목구비가 덜 갖춰진 것도 있었다. 머리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다행히 깎아지른 내 절벽 뒤통수는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듣고 일당 봉투를 손에 받아 들기 전까지, 나는 찬찬히 8개의 두상들을 살폈다. 서로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건 모두 나였다.
나의 두상과 내 몸의 뒷면, 마음의 사각지대까지 나보다 더 세심히 살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묘한 일이다. 묘하고도 감동적인 일이다. 그건 하나의 존재가 하나 이상의 의미로 살아내는 방식이 된다. 나는 아내에게 나의 절벽 뒤통수를 디저트 테이블로 내어줄 수 있다. 기꺼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엔 침대에 누워 아내의 두상을 가만가만 짚어봐야겠다. 여리고 순한 두피를 아프지 않을 만큼만 꾹꾹 누르며 지형을 익히는 마음으로 두상을 본뜨고 싶다.
서로 조금씩은 다르지만 결국 그건 모두 너였어, 그건 모두 나였어.
그런 문장을 곱씹으면서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