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의 세계

승패를 가름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

by 김경빈

나는 승(勝)과 패(敗) 사이에 낀 무(無)가 마음에 든다. 승자와 패자만 남겨지는 세계보다는 무승부까지 그대로 두는 세계가 좋다. 스포츠 경기도 토너먼트전보다는 리그전이 좋다. 무승부도 엄연히 전력을 다해 얻은 값진 결과인데 왜 무시당해야 하는가.


연인끼리의 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연애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잘못이 있으면 패배를 선언할 게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한다. 연애조차 승패의 관점으로 몰아세우는 갑이니 을이니 밀당이니 하는 말들이 싫다. 이기고 질 것 없이 사과할 일이 생기면 사과하고, 인정할 일이 생기면 인정하면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 무승부의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다정하게 연애할 수 있다.


무승부에서 ‘무’는 단순히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긴 사람도 없고 진 사람도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느냐? 바로 과정이 남는다. 결과로 어느 한쪽을 지워낼 수 없으면 그들 모두의 과정을 곱씹어보게 된다. 관객이든 선수든 마찬가지다. 그들이 흘린 땀과 부상 투혼과 종료 직전까지 내달리던 절박함, 그 밖에도 무승부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연애에서의 무승부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진다면 다툼은 그걸로 끝난다. 승자는 당당하고 패자는 초라하다. 하지만 무승부의 세계에선 서로의 과정을 곱씹어볼 수 있다. 찬찬히 곱씹다 보면 서로에게 미안하거나 고마운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 승자나 패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무승부의 세계를 긍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의 이십 대를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승패 양자택일의 세계라면 나의 이십 대는 분명 패배의 연속일 테다. 등단은 못 하고, 책은 많이 안 팔리고, TV 프로그램이든 어디든 불러주는 데도 없고, 하다못해 소위 ‘SNS 작가’ 타이틀을 단 인플루언서가 되지도 못했으니. 이런 식으로 자기 비하를 연발하다 보면 여지없는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무승부의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이긴 적도 진 적도 없으니 섣불리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 자칫 패배의 역사로 넘겨짚을 뻔했던 나의 이십 대, 그 과정 덕분에 수백 편의 원고들이 쌓일 수 있었다. 그 덕에 2권의 책을 냈고, 올해 8월에 또 1권 낼 예정이고, 에세이 클래스도 운영한다. 승리라고 말하기엔 소박해도 패배라고 단정 지을 이유도 없다.


지지 않겠다는 말이 반드시 이기겠다는 말은 아니다. 이 무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이기겠다는 포부보다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자주 한다. 지지 않겠다는 건 그게 무엇이건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포기하는 순간마저도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승패 양자택일의 세계에서 죽음은 승리일까, 패배일까? 그건 무엇을 상대로 얻은 승리 또는 패배일까? 나는 그저 무승부의 세계를 무한히 긍정하기로 마음먹는다. 오늘 하루도 잘 싸웠다. 그거면 됐다. 승패를 가름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워 곱씹을 것이다. 오늘도 값진 무승부였다고.


2021. 1. 14.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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