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과 걸음과 믿음

끝난 건 세상이 아니라, 그저 나의 작은 시절들

by 김경빈

나는 일찍이 수학에 젬병이었다. 사칙연산은 꽤 하는 편인데 수학은 어렵다. 도형이나 확률, 로그, 함수, 수열, 미분과 적분 등등은 나에게 너무나 먼 개념이다. 수학 강사였던 지인의 말로는 ‘수학 머리’라는 게 따로 있다고 한다. 수학적 사고에 능숙한 아이들은 하나를 알려주면 둘, 셋을 응용한다. 반면 나처럼 문학적 감성에 치우친 아이는 오늘 하나를 알려주면 며칠 전에 배운 둘, 셋을 잊거나 놓친다. 심지어는 ‘내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 휩싸여 괜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수학에 확실히 손을 뗀 건 중3 2학기부터였다. 당시 김해는 고입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중학교 내신 성적에 따라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나의 목표는 성적순으로 2순위였던 가야고등학교. 1순위였던 김해고등학교는 집에서 멀어 버스로 통학을 해야 했고 남고라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거리, 남녀 공학, 다니던 중학교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가야고등학교가 딱이었다.


어쩌다 나와 친구들은 고입을 위한 중학교 내신 성적이 3학년 1학기까지만 반영된다는 걸 알게 됐다. 즉 2학기 성적은 어떻게 되든 무관하다는 뜻이었다. 이미 내 성적은 김해고등학교에 안정적으로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게다가 가야고등학교는 하향 지원이니 더 이상 시험 성적에 목맬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공부를 안 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진 않아서 우선 하기 싫은 과목부터 손을 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사인, 코사인, 탄젠트가 등장하는 중3 삼각함수부터 수학은 내 인생에서 배제됐다.


아무 미련 없이 수학에서 손을 뗄 수 있었던 건 ‘이젠 끝!’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나는 마치 세상이라도 끝난 듯 후련하게 수학을 포기했다. 다행히 원하던 가야고등학교에는 수월하게 입학했지만, 다시 수학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했다. 수학의 정석이나 개념원리 같은 교재는 가장 앞부분인 집합, 로그 정도만 겨우 익힐 뿐이었다. 당시 영어와 수학은 수준별 수업으로 진행됐는데 나는 영어는 上반, 수학은 下반이었다. 모의고사에선 3년 내내 언어와 외국어는 1~2등급, 수리는 5~7등급 사이를 헤맸다. (수능 땐 극적으로 수리 영역 3등급을 받았다. 찍기 신공과 수공업 도형 그리기 신공 덕분에) 결국 세상이 끝난 줄 알았던 중3 2학기에 끝난 것이라고는 나의 수학 성적뿐이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 이후로도 나는 마치 세상이라도 끝난 듯 제멋대로 마음을 놓거나 좌절했다가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다. 6주 과정 공군 훈련소에선 5주 차부터 신입 훈련병들을 깔보며 기세등등하게 군가를 불렀다. 마치 군 생활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꼴값을 떨어댔다.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훈련소에서의 꼴값을 후회했지만, 병장 즈음 되니 다시 끝을 앞둔 사람의 오만함이 스멀스멀 몸에 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오만함도 제대 후 몇 개월을 채 가지 못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무능하고, 내 자신감보다 허망한 존재였다.


대학 졸업 때에도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등단도 취업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떠밀리듯 학교를 떠나려니, 마치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글쓰기도,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단했던 자아도, 남은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도 모두 끝난 것만 같았다. 세상이 끝나버린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계획과 노력 따위는 모두 부질없다. 나는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도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우울했다. 그 시절 침대에서 나를 안아주던 지금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훨씬 더 형편없는 인간으로 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어쨌건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세상의 작은 귀퉁이조차 끝난 적이 없다. 심지어 두 번의 세계대전에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선언된 와중에 8.15 광화문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기에 의료계가 집단 휴진을 해도 세상은 굳건하다. 하물며 수학을 못하고, 오만한 객기를 품은 채 제대를 하고, 이룬 것 없이 대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세상이 끝날 리가 없는 것이다. 끝난 건 세상이 아니라 그저 나의 작은 시절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끝이 남긴 건 늘 새로운 시작이었다. 다 내려놓고 싶은데도 가만히 그 끝을 응시하고 있으면 희미하게 다른 길이 보였다. 정말 끝난 것만 같을 땐 그 길이 어디로 향하든 지금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고 있느니 저기라도 한 번 가보자.' 그렇게 들어선 길은 때로는 낭떠러지로 향하고, 때로는 금세 길이 지워져 수풀을 헤쳐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더 크고 평탄한 길로 이끌고, 한 치 앞의 절망 대신 먼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의미를 다 알지 못해도 기분 좋은 순간들이 찾아오고 이렇게 계속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 길이 다시 끝나버리기도 했다.


끝을 미리 알고 걷는 길은 없었다. 안다고 믿었던 끝도 늘 어긋났다. 중요한 건 끝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끝을 응시하는 눈빛과 희미한 길이라도 일단 나서보는 걸음이다. 끝을 만나도 다시 걸어보기로 다짐하는 마음이다. 아직 걷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매일 쓰는 이 글도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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