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 리비툼의 순간

있는 그대로 충분한 말들

by 김경빈

나름 글깨나 쓴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귀한 문장을 직접 적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의 납골당에 자식들이 올리는 인사말을 손자인 내가 적었고, 처제가 결혼할 당시 신부 아버님(지금의 장인어른)께서 낭독할 덕담도 내가 적어드렸다. 우리 부부의 청첩장 인사말도 직접 적었고, 결혼식 날 양가 아버님께서 각각 낭독할 덕담도 미리 적어드렸다. 장인어른께선 담담하게 읽어주셨지만 내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나는 그리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눌변이라 그랬던 건 아니다. 호탕한 성격에 목소리가 큰 아버지는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시고 명절엔 나름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자처하신다. 철학, 명상, 종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셨고 술만 마시면 나름의 사상을 몇 시간이고 늘어놓는 분이다. 상견례 때도 장인어른과 유쾌한 핑퐁을 주고받으셨다. 오죽하면 엄마가 “나는 느그 아빠가 말을 잘해서 더 밉다. 자기 잘못이 더 큰데도 말로 하면 이길 수가 없다.”라고 했을까. 논리나 비유, 묘사 어느 면으로 보나 아버지는 달변가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대중 앞에 나서는 것만은 어려워하신다. 외할아버지 팔순 잔치 때도 그랬다. 맏사위 자격으로 한마디 하랬더니 우물쭈물하다가 눈물을 훔치고는 “쭉 건강하이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이소.”하는 말을 겨우 건넬 뿐이었다. 내가 북콘서트니 강연이니 하며 돌아다닐 때도 “희한하네… 내 아들인데, 나는 못하는 거를 니는 참 잘하네.” 하셨다.


엄마도 아버지의 그런 성격을 알기 때문에 내게 아버지가 낭독할 덕담을 미리 적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성화에 떠밀려 짧은 문장을 적으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절대, 이 문장을, 읽지 않으실 거라고.


결혼식 당일, 사회자의 부름에 연단에 오른 아버지는 연신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셨다.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는 손끝이 약간 떨리는 게 보였다. 며느리와 아들을 번갈아 보면서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미소를 지으시기도 했다. 어찌저찌 성혼선언문은 적힌 대로 읽으셨는데 문제의 덕담이 남아있었다. 눈앞에 며느리와 아들을, 몇 미터 앞으로는 하객들을 마주한 아버지는 몇 초간 침묵을 지켰다. 장내에 의아함과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려던 차에 아버지는 입을 떼셨다.


“어… 그, 일단은 여기 와주신 하객 여러분들. 참말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기 뭐, 덕담이라꼬 뭐라뭐라 글이 적혀 있는데, 빈아! 아름아! 아버지는 이거 안 읽을란다. 우리 좋은 얘기는 우리끼리 나중에 모여서 하기로 하자. 하객 여러분들. 귀한 시간 내가꼬 여기까지 와주셔가 진짜 고맙습니데이. 고맙습니다.”


그 후로도 큰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서너 차례 더 하셨다. 하객과 사돈 내외와 며느리와 아들에게. 의아하던 분위기는 약간의 황당함으로, 그러다 놀라움으로, 끝내는 유쾌함으로 이어졌다. 눈가가 약간 젖은 아버지는 자리로 돌아가시면서 내게 살짝 윙크를 건넸다. 나도 다 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최고의 축하를 전했고, 나는 그게 좋았다. 아버지의 투박하고 진심 어린 애드리브에 비하면 내가 미리 적어둔 문장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하객으로 있던 친구들도 모두 아버지의 감사 인사가 멋지고 유쾌했다고 회상한다. 물론 엄마는 식이 끝날 때까지 아버지를 째려봤지만.


흔히 극적인 사건을 두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한다.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도 한다. 인생을 굳이 영화나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당연히 각본 따위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생의 분량은 90분도 아니고 16부작도 아니다. 당장 끝나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수십 년간 이어질 수도 있다. 대사를 모조리 외운 배우들도 완벽한 장면을 위해 몇 번씩 다른 컷을 연기하는데, 각본 없는 인생을 매번 완벽하게 살아낸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무방비 상태로 인생의 중대한 순간들을 맞이하는 게 두려워서 우리는 이런저런 준비를 한다. 관혼상제나 면접, 의례적인 자리들이 모두 그렇다. 정해진 절차와 양식에 따라, 비슷한 대사를 외우고, 비슷한 표정을 짓는 일들.


그런데 가끔은 투박하고 서툰 표현에 마음이 동할 때가 있다. 어려운 말이나 유려한 수식 말고, 쉽고 단순한 언어에 진심만 가득 담을 때.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그런 말들은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스스로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말들이니까. 전략적인 애드리브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진심이 툭, 흘러나온 순간이니까.


만약 아버지가 내가 적어드린 문장을 그대로 읽었다면 지금까지 그 순간이 이토록 선명할 수 있었을까. 애드리브(Ad-lib)는 ‘뜻대로, 자유롭게’라는 뜻의 라틴어 아드 리비툼(Ad libitum)에서 유래된 말이다. 결혼식 날 아버지의 애드리브에는 자유로우면서도 다정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아드 리비툼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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