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
기록과 행동과 관성
올해 서른여섯인 나에게는 막연한 목표가 있다. 내 나이 마흔에는, 가수 김종국 같은 몸을 만들겠다는 목표. 바디프로필을 찍겠다거나,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보겠다거나, 하다 못해 여름 바닷가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싶다거나 하는 세부 사항은 없다. 시기와 상태만 있다. 마흔에, 가수 김종국 같은 몸.
군 입대를 기점으로 간헐적이나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주로 웨이트 트레이닝이었으나 축구, 등산, 달리기 등등이었는데 10여 년 동안 생활체육을 한 것 치고 몸매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70kg이었던 몸무게는 이제 96kg에 달한다. 어릴 적 자주 보던 예능 <무한도전>에서 정준하의 캐릭터를 대변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0.1톤의 사나이었는데, 내가 그 영역에 근접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정준하보다 키도 작고, 덩치도 왜소한 것 같은데. 하지만 스스로를 "왜소한 것 같은데"라고 말할 때마다 아내와 지인들은 기함을 한다. 어쩌면 나는 마땅히 0.1톤의 사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초,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10년 넘게 헬스장을 다녔는데, 유튜브로 이런저런 운동 지식도 습득했는데, 3대 500은 못 되어도 400 근처는 되는데, 내 몸은 왜 이런가. 무엇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억울한 마음을 품고 며칠을 운동하다가,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나? 최선은 어떻게 확인하지?'
그날부터 '번핏'이라는 운동 일지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기록 없이 그때그때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운동하는 편이었다. 하루는 상체(가슴-등-어깨), 하루는 하체와 팔, 그리고 하루는 휴식의 루틴으로 매번 운동의 무게와 횟수를 기록해 나갔다. 2주쯤 기록하다 보니 황당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스스로 '최선'이라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최선이었다 치자'라는 변명이었다는 깨달음. 컨디션을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기분에 따라' 운동해 왔다는 깨달음. 더 극단적으로 말해, 나는 과거의 나를 이겨보려 애쓰기보다는 과거의 나와 적당히 타협해 왔다는 깨달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때 이후로 운동할 때마다 같은 종목은 지난번에 비해 단 1회라도, 단 5kg이라도 더 들기 위해 노력했다. 막막한 고지를 오르는 사람이 겨우 한 뼘의 걸음에 집중하듯, 막연하고 원대한 목표(마흔에, 김종국 같은 몸)를 마음에 품되 오늘 풀업 1번 더 하려 핏대를 세웠다. 그렇게 반년이 더 흘렀고, 흔히 말하는 3대 운동의 중량의 1RM이 차근차근 늘었다. 160kg이었던 데드리프트는 190kg까지, 100kg이었던 벤치프레스는 115kg까지, 다칠까 겁이 나서 100kg도 들지 못했던 스쿼트는 140kg도 1번은 들 수 있게 되었다. 식단을 하지 않아 몸무게는 줄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글동글한 곰에서 조금은 우락부락한 고릴라 느낌으로 변하는 듯도 하다. 이제는 막연히 운동 볼륨(무게X횟수)를 늘리는 데 한계를 느껴서, 운동 방법을 바꾸거나 쉬는 시간을 줄이려 한다.
사실 무게가 늘고, 몸이 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운동 자체가 일상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직장인에게 주 4일에서 5일, 매번 1시간 30분가량 시간 내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운동이 의무이고 업무처럼만 느껴진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 반복되면 결국 확신을 갖게 된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아무리 귀찮아도, '분명 운동 후에는 상쾌하고 행복할 것이다'라는 확신. 그 상쾌함과 행복은 인생을 역전시킬 엄청난 이벤트는 아니지만, 일상의 표정을 바꿀 만한 이벤트 정도는 된다. 생각해 보라. 로또 5천 원어치를 구입하면 100%의 확률로 5등 당첨 2건이 된다면, 로또를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1등은 아니지만 매번 결코 손해보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요즘은 매일의 기록과 행동과 습관이,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하는 일이 언젠가 막연하고 원대한 목표를 이루게 해 줄 것이라는 확신도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살면 나이 마흔에, 김종국 같은 몸을!
그러므로 학생 시절부터 지겹게 들어온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부담을 떨쳐도 좋겠다. 구체적이어야 할 것은 '목표'가 아니라 '계획'이다. 자주 해야 할 것은 목표를 이루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꾸준히 해내는 '실천'이다. 목표 따위 좀 막연하게 꾸면 어떤가. 꾸다가 잊으면 또 어떤가. 그러다 쉽게 잊히지 않는 목표가 자리 잡으면, 그걸 이루기 위한 작고 사소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묵묵히 실천하자. 나이 마흔에, 김종국 같은 몸으로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뿌듯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