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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02. 2018

멘토를 찾아서

근데 멘토가 되는 건 부담스러워.

                                                            

스스로를 멘토라 칭하는 자


며칠 전 일이다. 12월을 기점으로 바쁜 일들이 모두 끝난다.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라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 다큐멘터리 대본 작업 때문에 집 근처 스타벅스 2층에 자리 잡고 앉아서, 한 20분쯤 지났을 때, ‘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 땅의 청춘들이었다. 아마도 이십 대 중반쯤, 아마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아마도 수심이 가득했으리라. 6명인 그들은 2인용 사각 테이블 두 개를 나란히 붙이고, 사이좋게 빙, 둘러앉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책을 보며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 소리는 특히 선명하고,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그 유난스러움 때문에 눈길이 가 다시 보니, 수심 가득한 표정들 가운데, 유독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한 청년이 한 명 있었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그는 그들의 ‘자칭 멘토’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멘토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꽤 바쁜 상황이었고, 방에서 작업하다가 바로 옆 침대로 직행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비싼 커피 값을 들여 스타벅스에 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아니 ‘자칭 멘토’ 였던 그의 이야기가 너무 크고 선명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동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후배 5명을 데리고 호기롭게 스타벅스에 들어선 ‘잘난 선배’ 그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꽤 좋은 대학을 졸업한 듯했고, 연구실이니 뭐니 하는 걸 보니 공대생, 얼굴로 보나 말의 내용으로 보나 졸업한 지 1~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디 대기업이나 괜찮은 곳의 연구원으로 들어가서 근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가장 최신화된 2017년 9월 부산의 청년 실업률이 무려 12%에 달하는 요즘에, 아마 그 선배는 우상화되기에 충분했으리라. 하필 내가 작업하고 있던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부산 청년’이라 괜히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엿들은 ‘자칭 멘토, 잘난 선배’ 그의 말들은, 불쾌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거만하고 교조적인 그의 이야기란 본인의 인맥, 카더라~ 하는 각종 회사의 뒷얘기, 본인이 학생 때 얼마나 열심히 했었는지에 대한 회고, 지방거점대학교를 ‘지잡대’로 통칭하는 갑 의식, ‘사회란 이런 것이더라.’ 하는 먼저 어른이 된 자의 수박 겉핥기 식 무용담. 그 속에 자기 의견이나 가치관은 없고, 듣다 보면 결국 자기 자랑으로 귀결되는 화법. 교양 있는 문장 가운데 쿨한 척 섞이는 저급한 비속어들. 그러는 동안, 나머지 5명의 후배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내 인생의 멘토를 찾아서


그쯤 듣고 있자니, 문득 ‘멘토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우선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본 적은 없으니,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볼 것은 없었고 내가 살면서 멘토라 부를 만한 사람이 누가 있었나, 되새겨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곽효경 담임선생님. 참 멋진 분이셨다. 사회 교과를 수업하셨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웬만한 유명 인터넷 강사 못지않을 만큼의 강의력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젠틀한 성격, 뱉은 말은 지키고야 마는 신뢰감, 여학생 반에서는 여고생들의 짓궂은 장난에 가끔 귀가 빨개지는 인간미까지. 적어도 내 학창 시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지 않을까. 얼른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어서 찾아봬야 하는데, 쩝..


대학 국문과 후배 이찬복. 국제통상학부로 입학해, 군 제대 후 국문과로 전과한 괴상한(?) 이력을 가진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후배였다. 겨우 1살 차이였지만 문학뿐만 아니라 패션, 음악, 문화 전반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서로 스타일이 다르니 내가 따라 할 것들은 없었지만, 늘 부럽고 배울 것이 많은 후배였다. 그 후배 덕분에 대학 생활을 하며 ‘여실지’라는 문학 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고, 교내외의 각종 문학 공모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큐멘터리 작업 중인 방송국의 제작국장님이자, 다큐멘터리의 PD님이기도 하신 유정임 국장님. 경이로울 정도의 활동량과 에너지, 막막해 보이는 모든 상황을 일사천리에 뚫고 나가는 담대함과 인적 네트워킹, 건설적인 비판 뒤에는 늘 제시하는 본인만의 대안,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 소통의 능력까지. 염세주의와 거만함으로 멘토 따위 찾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가히 충격적인 인물이었다. ‘멘토’라는 표현도 좋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른’ 이란 마땅히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신 분.


멘토란 ‘말하는 자’ 가 아니라 ‘살아가는 자’


그렇게, 해야 할 작업은 뒷전으로 미뤄두고서 귀로는 ‘자칭 멘토’인 한 청년의 불쾌하고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로는 내 인생의 멘토들을 떠올리며 한 30분쯤을 보냈다. 30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 6명의 무리 중 말하는 것은 오직 그 1명이었고, 나머지 5명의 청년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탄식인지 깨달음인지 모를 ‘아~’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머릿속으로 정리가 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멘토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서. 적어도 내 삶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멘토는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요, 나 멘토요.‘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굳이 드러내거나 잘난 체하지 않아도, 그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고 영감을 주는 사람. 멘토란 ’ 말하는 자‘가 아니라 ’ 살아가는 자‘였다. 멘토답게 살아가는 사람.


그러면서,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혹시 어디서 후배들, 동생들에게 저딴 식으로 재수 없이 행동했던 거 아닐까. 나는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선배라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내세울 것도 없는 선배가 저딴 식으로 말했다면 얼마나 더 재수 없었을까. 고마운 반면교사를 만났다. 입단속 잘해야겠다. 나이는 벌써 서른이지만, 아직 어른은 아니라서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건 생각만해도 부담스럽다. 근데, 저기 저 친구들 이제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6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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