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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05. 2018

누가 종을 울려준다면

종은 저 혼자 소리 내지 못한다.

시집 <다시, 다 詩> '종' 中

7년 전, 첫 대학 문학상을 받았던 때 출품했던 시다. 


연애를 오래 하다 보니, 연애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들의 배면을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뻔한 클리셰처럼, 오르내리는 연애의 고충과 조언들. 그중 하나는 '여자는 말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고, 남자는 말해야 알아듣는다.'였다. 사실 이런 표현 자체가 지독히 구시대적인 발상이지만, 삶은 늘 앎에 뒤쳐지는 까닭에 다 알면서도 실제로 저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은 꽤 많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도와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손을 뻗어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이제는 나도 이해한다. 심지어는 나도 그런 마음으로 입을 꾹 닫고 앉아 있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럴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아야만 하는 상태.

"나 괜찮지? 잘 살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태일 때는 누군가 나에게 대답해줘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하지만 누군가 종을 울린다고 세상에 달라지는 것이 뭐 있겠는가. 다만 몇 초, 몇 분 그 종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인생의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소리 내지 못하는 종처럼, 누군가의 묵직하고도 명징한 위로를 기다린다. 위로를 주고받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지만 적어도 종소리는 아름답게 골짜기로 퍼져 나갈 것이다. 




너는 이제 어른이라고

이제 다 컸다고 그렇게 말을 하겠지.

꼭 쥐고 있던 누군가의 손을 놓고서

너의 걸음은 너의 의지대로 걷고

너의 기쁨은 온전히 너로 인해 태어나며

너의 슬픔은 오직 너 혼자 껴안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하겠지.


그래, 그래 보아라.

비도 오지 않는데, 길을 걷다가 문득

너의 마음이 쩍, 하고 벌어지는 날

너도 모르게 어느 벤치에 앉아

덜컥, 내려앉은 네 존재의 가치를 바라보게 되는 날

그런 날에도 너 혼자, 그렇게 어른답게 견뎌 보아라.

어디, 견딜 수 있다면.


하다가 안 되면, 두 팔로 너를 감싸 안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되뇌어도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네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절절하게, 오래 삭힌 젓갈처럼 울어도 보아라.


너는 알게 되겠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기는 쉽지만

정작 너 자신을 위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종은

저 혼자서는 소리 내지 못 한다는 것을


종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슬픔 하나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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