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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07. 2018

오해의 힘

누가 뭐래도 난 잘났다고 믿자.

                                                    

진실보다 강한 오해의 힘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스포츠 브랜드 'ASICS'의 슬로건이기도 한 문장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 시 가운데 한 구절이 격언으로 전해져 온 것인데, 흔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고 해석한다. (아마 그래서 스포츠 브랜드의 슬로건이 될 수 있었겠지.) 그러니까, 해석된 내용으로만 보면 ‘건강한 육체’가 성립해야 ‘건강한 정신’이 뒤따르는 인과 관계로 파악된다. 과거 미군 내에서 체육 교관들이 이 격언을 모토로 신병들을 아주 거칠게 굴렸다고 하니, 이런 해석이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해석은 최초 발언자인 유베날리스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였다. 유베날리스의 풍자 시 중 격언으로 굳어진 원래의 문장은 “오란둠 에스트 우트 시트 멘스 사나 인 코르포레 사노(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로 해석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가 된다. 당시 고대 로마에서 신체 단련에만 몰두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논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베날리스의 점잖은 문장을 조금 경박하고 솔직하게 풀어쓴다면 “몸만 키우지 말고, 정신머리도 좀 챙겨보지 그래?”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유베날리스의 진의를 아무리 말해본들, 우리가 오해하고 써온 의미의 단단한 벽을 허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해로 빚어진 의미가 더 멋지기도 하고!)


 이런 ‘오해의 힘’은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달걀 세우기’의 원조가 신대륙 항해를 성공했던 콜럼버스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 TV 매체에서의 인용, 심지어 학교 선생님조차도 당연한 듯이 그렇게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이 또한 오해라고 봐야겠다.


 이미 아랍에서는 ‘달걀을 깨뜨려 세운’ 한스라는 자의 이야기가 속담처럼 공공연히 인용되어왔다고 한다. 게다가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생몰 연대인 1450년~1506년보다 훨씬 이전인 700년대부터 약 800년 가까이 아랍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콜럼버스가 ‘발상의 전환을 표현하는 관용구’를 잘 활용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런 진실 역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오해의 힘’보다 강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당장 네이버에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이런 시시콜콜한 비화들이 넘쳐나도, 여전히 ‘달걀 세우기’ 하면 ‘콜럼버스’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니까. 이런 오해의 힘은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오해를 공유하면서 생겼다고 봐야겠다.


때로는 오해의 힘을 활용하자 


 오해가 많은 사람들에게(일반성), 오랫동안 변치 않으면서(보편성) 강력한 힘을 얻는 과정을 알아보면서, 나는 ‘우리 인생에도 오해의 힘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의 진실이 그리 대단치 못할 때. 지금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막연한 희망과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열정, 그리고 위태로운 객기뿐일 때. 혹은 이제 막 뭔가 시작하려는, 아무 미약한 때. 보잘것없는 진실만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을 때.


 그럴 땐, 스스로에 대해 과감한 오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엄청난 놈이라고. 내가 지금 가진 아주 작은 가능성이 광활한 숲의 첫 씨앗이라고. 이 미약한 시작이, 기적처럼 창대한 끝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오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은 드러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요즘 뭘 좀 하는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해. 잘 지내고 있어.” 그런 오해의 힘이 부실한 진실의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꿈, 도전, 그런 단어들의 생생한 마중물이. 그리하여 어느 날엔 내가 뱉은 화려하고 멋진 오해가, 더 이상 오해가 아닌 나의 진실이 되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오해의 힘’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고, 유베날리스와 콜럼버스의 진실을 파헤치는 동안, 나는 어쩐지 조금 더 오해한 채로 지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장에선 어느 때보다 더 가열차게 운동을 하고, 달걀 프라이를 부칠 땐 한스보다는, 그래도 콜럼버스를 떠올려 봐도 괜찮겠다는 그런 생각. 어쩌면 아직 내가 가진 진실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나도 오해의 힘을 빌려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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