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몇 사람이 있다. 조각의 천재로 불렸던 잔 로렌초 베르니니.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 오늘 소개할 보르게세 미술관이다.
배경을 알고 보면 재미있는 작품이 많아서 짧은 설명과 함께 입장 시 주의할 점 등을 함께 소개하겠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로마 구시가지와 가까운 보르게세 공원에 있다. 이탈리아의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가치는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았던 미술관, 박물관을 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보르게세 미술관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보르게세 미술관은 다른 이탈리아 미술관, 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예약이 힘든 곳이다. 시간대별로 티켓이 한정되어 있으며, 원활한 감상을 위해 소량의 티켓만 판매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예약 구매를 하지 않으면 입장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가깝다는 의미다.
미술관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일주일 전에 티켓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KKday에서 티켓을 예매했다.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상품도 있지만 자유롭게 돌아보고 싶어 입장권만 구매했다. 날짜와 시간대를 선택하고 전자 바우처를 발행 받으면 끝이다. 입장 시 검표원에게 캡처한 화면이나 프린트한 티켓을 제시하면 된다.
보르게세 공원의 규모는 로마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넓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공원과 이어진 포폴로 광장과는 반대편이니 미술관만 관람할 예정이라면 교통편을 알아봐야 한다.
관람은 지하층으로 입구로 들어가서 지상층 갤러리부터 시작된다. 티켓을 확인하는 입구는 미술관 정면에 있는 지하 출입구이니 혼동을 피하자.
티켓을 제시했다면 무료로 짐을 맡길 수 있다. 카운터에는 가방이나 귀중품을 팩에 넣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관람이 끝나고 번호표를 제시하면 자동화 기기가 짐을 찾아준다.
나 역시 옷과 가방을 보관한 덕분에 가벼운 몸으로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중앙의 안내 센터에서는 관람의 전시 스케줄을 공지하거나 가이드 동행 시 이어폰을 제공한다. 전자 바우처로 티켓을 발급받았다면 지나쳐서 바로 입장하는 라인에 줄을 서면 된다.
검표원이 티켓을 확인하면서 주는 스티커는 같은 시간대에 재입장 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1층 갤러리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베르니니의 역작인 페르세포네의 납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계절과 곡식의 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장면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이다.
두 인물 밑의 머리 세 개 달린 개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 수문장인 케르베로스다. 페르세포네는 이후 지상으로 풀려나지만 저승의 음식을 먹어 일 년 중 1/3은 하데스의 아내로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계절을 관장하는 신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가 저승에 있는 동안엔 슬픔에 잠겨 힘을 잃었고, 그 때문에 곡식이 열리지 않고 차가운 바람이 불게 되어 겨울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야기도 재밌지만 역동적인 순간을 조각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가까이서 보면 핏줄이나 주름, 눈의 담긴 표정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데스의 손이 페르세포네의 살점을 파고드는 디테일은 작품이 제작되던 당시엔 상상도 하기 힘든 표현법이다.
갤러리는 여러 방을 순서대로 둘러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람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정교한 회화와 조각상을 아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게 보르게세 미술관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만지는 건 절대 금지다.
이탈리아의 갤러리는 바닥부터 벽면, 천장까지 모두 미술품이다. 관람 시간은 두 시간으로 충분하니 천천히 이동하면서 미술품을 감상하길 바란다. 물론 결이 맞지 않는 작품은 빠르게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체력을 아끼고 다음에 나올 작품을 기다려보자.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아폴로와 다프네다. 베르니니의 조각상으로, 앞서 설명한 페르세포네의 납치와 비슷한 구도로 제작됐다. 사람과 옷뿐만 아니라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표현한 디테일이 정교하다.
이 작품은 아폴로에게 쫓기던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태양의 신 아폴로가 계급이 낮은 강의 신의 딸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쫓아다니게 되는데, 계속된 구애에 지쳐 도망치던 다프네는 스스로 나무로 변해 생을 마감한다.
나무는 월계수(그리스어로 다프네)로, 슬픔에 잠긴 아폴로가 자신의 성수로 삼아 그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만들게 된다.
관람이 끝나면 처음 입장했던 방으로 돌아가 기념품 판매점으로 나갈 수 있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제작한 기념품이나 포스터, 도록을 판매하고 있으며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다.
나는 마그네틱과 엽서를 구매해 순간을 기념했다.
- 이용시간 : 09:00~19:00 / 월요일 휴무
- 주소 : Piazzale Scipione Borghese, 5, 00197 Roma RM, Italy
2022년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여행 수요가 완전히 회복되어 내년에는 더 즐거운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꼭 조언해 주고 싶은 한 가지는 바로 '예약'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인기 관광지가 아닌 어느 곳이든 현장에서 예매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하거나 현장 예매를 아예 열어두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쩌면 인생에서 두 번 다시없을 여행이다. 남은 연말 동안 계획한 여행을 모두 잘 마무리 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