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고 기록하는 에디터 선명이다. 나는 레코드 음반(Long-Playing record)을 좋아한다. 비교적 최근에 발매된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오래된 재즈나 디지털 음원이 없는 앨범은 기꺼이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찾아 듣는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중고 사이트를 들락날락하거나 해외 경매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선택지는 중고 음반을 판매하는 레코드샵이다.
도쿄에는 수많은 레코드샵이 있다. 시부야의 상징인 타워레코드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레코드샵까지 다양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LP 열풍이 불면서 좋은 레코드샵이 많이 생겨났지만 도쿄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일본은 아직도 LP로 음악을 듣는 인구가 많은 데다(1인당 음반 구입에 지출하는 비용이 세계 1위다) 턴테이블 관련 제조와 음반 프레싱 기술도 발달해 있다. 말하자면 세계 최대 음반 시장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도쿄에서 가볼만한 레코드샵을 다섯 군데 정도 소개한다. 도쿄의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와 빈티지한 상점가로 유명한 시모키타자와 이렇게 두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샵들이다.
“No Music, No Life”를 슬로건으로 하는 시부야 최대의 레코드샵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기업이지만 일본에서 현지화에 성공해 현재는 시부야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장소다. 노란색 전광판을 따라가기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시부야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빌딩 전체가 레코드샵이다.
타워레코드의 장점은 역시 커다란 매장 규모다. 음반의 판매량만큼이나 입고 속도도 빠르고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신보가 나오면 벽 한 면을 가득 채워 진열할 정도다. 또, 다른 레코드샵과 달리 매장 내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준다.
K-POP 가수의 앨범을 판매하는 층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일본의 MZ 세대에게 K-POP이 얼마나 유행인지 알 수 있다. 중고 레코드 코너에 가면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도 종종 보인다. 그 틈에서 레코드를 뒤적거리고 있으면 스스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거의 모든 중고 레코드샵에는 도서관처럼 전자 검색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앨범을 찾아야 한다.
- 이용시간 : 매일 11:00-22:00
- 주소 : 1 Chome-22-14 Jinnan, Shibuya City, Tokyo 150-0041 일본
- 문의 : +81 3 3496 3661
이곳 역시 타워레코드와 마찬가지로 시부야 중심에 위치한 HMV 레코드샵이다. 음반 및 음악 관련 서적을 판매한다. HMV도 CD에서 스트리밍 음원으로 시대가 바뀌면서 파산한 영국 회사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살아남았는데 지금도 음반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겐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선 가까운 타워레코드에 비해 매니악한 음반을 많이 판매한다. 타워레코드가 아이돌 문화를 적극 수용한다면 HMV는 록이나 일본의 80-90년대 음악을 주로 취급한다.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일본의 Citypop을 즐겨 듣는다면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HMV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음악을 주로 다룬다. 특히 록 음악을 좋아한다면 아티스트별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으니 찾기 편하다.
매장 내부가 세련된 느낌은 없지만 옛날 비디오테이프 가게처럼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종이(앨범 재킷)가 마모되면서 낡은 가게만의 냄새가 난다.
- 이용시간 : 매일 11:00-21:00
- 주소 : 일본 〒150-0042 Tokyo, Shibuya City, Udagawacho, 36−2 ノア渋谷 1F/2F
- 문의 : +81 3 5784 1390
시부야에서 시모키타자와로 이동했다. 시모키타자와는 도쿄 내에서도 빈티지 쇼핑으로 잘 알려진 동네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빈티지 의류와 더불어 중고 레코드샵과 중고 서점도 많이 보인다. 디스크유니온은 다른 지역에도 있지만 시모키타자와의 다른 레코드샵을 방문하면서 같이 둘러보기 좋은 위치에 있다.
디스크유니온 역시 꽤 규모가 큰 레코드샵인만큼 체력이 있어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다. 그나마 앨범 재킷 우측 상단에 간략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어서 빠르게 음반을 넘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레코드샵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판매하지만 유독 테크노와 하우스 등 클럽 뮤직 음반이 많다.
개인적으로 다섯 곳의 레코드샵 중에서 가장 쇼핑이 힘들었다. 신보나 대중적인 음반보단 오래되고 매니악한 음반이 많다. 모두 인식하고 구매하기엔 경험치가 상당히 필요하다. 특히 80년대 기준으로 미국 힙합, 클럽 뮤직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지나쳐도 괜찮다.
- 이용시간 : 평일 12:00-20:00 / 주말 11:00-20:00
- 주소 : 일본 〒155-0031 Tokyo, Setagaya City, Kitazawa, 1 Chome−40−6 柏サードビル 1階
- 문의 : +81 3 3467 3231
시모키타자와 빈티지 쇼핑 거리의 초입에 위치한 JET SET. 2층에 있는 작은 매장이라서 지나치기 쉽다. 1층에서 푸른색 농구공 간판을 찾으면 된다. 시모키타자와의 로컬한 매력이 가득하다.
작은 가게인 만큼 사장님의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 음반을 위주로 살펴볼 수 있다. 번역기를 통해 설명을 읽어보면 처음 보는 음반이라도 구매 욕구가 생길 수 있다. 중고 음반은 청취도 가능하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카운터에 부탁해 보자.
오래된 음악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발매한 인디 음악을 주로 다룬다. 생전 처음 보는 음반이 많아서 사장님에게 추천을 부탁드렸다. 한참을 고민하다 하우스 장르의 음반을 추천받았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대중가요나 재즈 외에도 하우스나 얼터너티브 장르를 좋아한다면 아무 음반이나 골라서 사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음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취향을 넓히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여행 기념품처럼 생각하면 어떨까. 집으로 가지고 오면 애정도 생기고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다.
- 이용시간 : 매일 12:00-20:00
- 주소 : 2 Chome-33-12 Kitazawa, Setagaya City, Tokyo 155-0031
- 문의 : +81 7 5253 3530
시모키타자와 빈티지 거리에 위치한 레코드 스테이션 (RECORD STATION)이다. 빈티지 가게가 넘쳐나는 시모키자와에선 유독 신발 가게처럼 세련된 분위기의 매장이다. 가게 내부가 다른 레코드샵처럼 좁지 않지만 그렇다고 규모가 크지는 않다.
레코드 스테이션에선 다양한 음반을 판매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대중적인 큐레이션을 지향한다. 레코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스쳐 봤을 법한 음반이 벽에 진열되어 있다. 특히 Citypop 장르의 앨범이 많이 입고되어 있다.
음반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에게 음반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찾는 일을 디깅(digging)이라고 한다. 뜻 그대로 채굴, 발굴 등을 뜻하며, 새로운 음악을 찾거나 구매하고자 하는 앨범을 찾는 행위에 모두 통용되는 단어다.
디깅에 익숙하지 않은 음반 수집 입문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매장이다. 음반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고 아쉽지 않을 정도로만 엄선되어 있다.
이곳의 사장님은 영어를 잘하시고 원하는 음악 장르에 맞게 음반을 추천해 주시기도 한다. 그 느낌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대화를 나누듯 즐겁다. 생각해 보면 음반디깅은 빈티지 옷을 쇼핑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규모가 큰 매장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여유롭게 쇼핑하는 것도 좋지만 작은 가게에서 가게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추천받는 것도 재밌다.
- 이용시간 : 수~월 13:00-19:00 화요일 휴무
- 주소 : 〒155-0031 Tokyo, Setagaya City, Kitazawa, 3 Chome−30−1 下北沢かどやビル 2F
- 문의 : +81 3 5738 7810
도쿄의 오프라인 레코드샵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디깅이 쉽지 않다. 그만큼 규모가 커서 자신만의 디깅 루트를 정하지 않으면 체력이 바닥날 수 있다.
그래도 지금은 샤잠(Shazam) 등의 앱을 사용해 음악적 취향을 넓히고 번역기를 돌려 점원에게 원하는 앨범의 재고를 물어볼 수 있는 시대다. 성실함과 용기만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