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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케이데이 KKday Sep 01. 2022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찾은 여유

군산 가볼만한 곳

군산은 낯선 도시이다.


나고 자란 도시를 그렇게 표현하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벌써 이곳을 떠나 산 지도 10여 년이 다 되어간다.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이 현지인 맛집 같은 걸 물어올 때마다 머쓱한 미소만 지어 보이는 외지인이 돼버린 것이다. 가장 잘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곳이 가장 낯설어지는 기분. 그게 참 공허했지만 한편으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여행객들이 군산을 찾는 이유가 말이다. 


내 기억 속 작고 작기만 했던 그 도시에 어떤 이유로 그들은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것일까. 완벽하게 여행객의 마음으로 둘러본 추억 속 나의 도시, 군산을 소개한다. 



1. 신흥동 일본식 가옥



먼저 여행객들이 붐비는 신흥동으로 향했다. 이 동네에 일제 강점기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서일까. 일본식으로 지어진 상점들이 한데 모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신흥동에 위치한 일본식 가옥은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거주하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을 따 '히로스 가옥'이라고도 불린다. 국내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목재 소재의 외관이 특징이며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재로도 지정돼있다.



좁다란 입구를 걸어 들어가면 정원과 주택이 정면으로 보인다. 작은 규모의 정원엔 굵직한 바위들과 커다란 나무들이 촘촘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대자연을 집 앞마당으로 끌어온듯한 정원의 모양새는 어쩐지 베일에 싸인 것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가옥은 일본식 주거 양식에 서양식 응접실과 한국식 온돌을 결합해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양식이 혼합된 형태는 당시 근현대 건축물의 특징이었다고 하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원래는 내부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관람이 금지돼있으니 이용에 참고하자.



정원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가려는 순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현수막이 눈에 걸렸다. 결국 아픈 기억은 역사 속으로 흩어졌고 건축물은 문화재로 남았다. 이렇게 남아있는 당시 잔재들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곱씹어 봐야 했던 것은 이런 문장이 아니었을까.



내부 관람이 불가능해 전체를 둘러보는 데에는 약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옥은 낮은 천장, 작은 창문, 아기자기한 정원 등 전체적으로 작지만 다채로운 인형의 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마음 아픈 역사와 근대 건축물의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일본식 가옥. 몇 장의 사진만 남기고 돌아서기엔 아쉬운 공간이다. 풍성한 사전 정보들과 함께 구석구석 찬찬히 돌아볼 것을 추천한다. 


- 운영시간 :

화요일 ~ 일요일 10:00 - 17:00

*월요일 휴관



2. 첼로네시아



하늘이 청명한 오후, 여행객들로 가득한 거리를 빠져나와 언덕을 올랐다. 숨이 가빠 올 때 즈음 발견한 표지판을 따라 들어간 곳은 첼로네시아다.



공간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방구석에서는 떠오르지 않았던 영감들이 커피향 가득한 카페에선 날개 돋친 듯 샘솟기도 하니 말이다. 한적한 정원 안에서, 또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조용한 구석에서 그런 것들을 해낼 수 있는 곳, 첼로네시아는 그런 곳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첼로네시아는 첼리스트이신 사장님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특유의 감성으로 꾸며놓으신 커다란 정원은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도 모를 커다란 나무들부터 그 아래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피어있는 꽃들까지. 포근하면서도 시원한 오월의 에너지가 한데 똘똘 뭉쳐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카페형 공간과 업무형 공간으로 나눠져있었지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널찍한 편이라 모두 휴식, 업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원을 거닐며 휴식을 취하다가도 내부에선 조용히 업무도 볼 수 있어 '공간을 빌린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느 카페와는 조금 다른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 음료와 케이크를 먼저 주문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당 만 원을 지불하면 기본 두 시간의 공간 이용권과 음료, 롤케이크가 제공된다. 원하는 이용시간에 따라 가격 또한 상이하니 방문 전 참고하자.



카운터 앞쪽에는 실제로 판매 중인 목각 오르골이 진열돼있었다. 첼로네시아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담긴 오르골은 모두 사장님의 작품. 이곳에서의 기억을 담은 기념품으로 구매해보는 것도 좋겠다. 


- 운영시간 :

화요일 ~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 일요일 10:00 - 20:00

*월요일 휴무

*공휴일 월요일은 정상영업



3. 은파 호수 공원



해가 뉘엿뉘엿 안녕을 고할 즈음, 북적한 신흥동을 빠져나와 조금 더 걷기로 했다. 평소 길바닥에서 발로 이동하는 시간이라면 누구보다 아까워하는 사람이지만 여행에서만큼은 프로 뚜벅이를 자처한다. 목적 없이 서두르지 않고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날에는 큰 위로가 되기도 하니깐.



첼로네시아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미룡동에 위치한 은파 호수 공원이다. 도시 규모에 비해 커다란 저수지를 품고 있어 이미 오랫동안 시민들의 단골 산책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반짝이는 물비늘이 아름다워 '은파'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찰랑이는 호수를 보며 오월의 늦바람에 몸을 맡기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 시작해도 결국 이어져있는 호수 산책길은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소요해 전부 돌아볼 수 있다.



특히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저수지인 만큼 어떤 날에 방문해도 그 계절의 향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여름이 코앞인 이 계절에는 노랗게 흐드러진 수선화를 만날 수 있고 초록의 색이 더욱 짙어지는 7,8월엔 물 위를 수놓는 연꽃을 구경할 수 있다.



하릴없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호수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다리가 보인다. 물빛다리라 이름 지은 이곳에서도 낭만적인 볼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음악 분수이다. 분수가 나오는 시간이 따로 공지돼있지 않아 아쉽지만 운이 좋다면 음악에 맞춰 꽃잎 모양으로 차오르는 물보라를 구경할 수 있다. 동절기를 제외한 계절에만 운영하니 방문 전 참고하자. 




여행의 뜻이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 했던가. 일상이 버겁게만 느껴질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곳에 진짜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낯선 곳에 습관적으로 걸어보는 희망, 그 힘을 맹신하곤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결국엔 내가 나고 자란 곳일 줄이야.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 군산, 더없이 좋은 이 계절에 우리의 일상도 한 템포 멈추고 나만의 속도와 여유를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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