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그 나라를 오래 선명히 기억할 수 있는 건 문화재도,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도 아닌 한 접시의 요리라고 생각한다. 향과 맛으로 남긴 기억은 뭐가 됐던 쉬이 잊히지 않으니까. 공항에 발을 디뎌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는 요즘, 집 근처에서도 전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맛 플레이스 세 곳을 소개한다.
더운 계절에는 입이 짧아진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레귤러 사이즈의 피자도 혼자 해치우는 사람이었는데, 여름이 되면 무언가 먹는 데 보내는 시간을 덜 쓰게 된다.
위샐러듀는 지중해 음식을 하는 곳이다. 지중해 음식?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빠르게 세계지도를 펼쳤다.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 등 더운 나라의 아래로 흐르는 해.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들은 올리브와 토마토가 잘 자라는 지역. 안 봐도 여름의 맛이겠구나 싶었다.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곳. 위샐러듀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그러하다. 볼 하나에 재료가 조금씩 담겨 나와 마구 섞지 않고 하나씩 숟가락에 얹어 먹는 식이다. 샐러드, 샥슈카, 마클라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되는 지중해 가정식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마클라바 형태의 레바논 가정식인 루나를 골랐다. 레바논은 인근의 중동 국가에 비해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토지를 갖췄다고 한다. 양질의 토지에서 얻은 신선하고 다채로운 식재료 덕에 레바논의 요리는 고급 요리로 취급된다고. 국내의 샐러드 카페에서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후무스 역시 레바논의 대표 음식이라고 한다.
처음 맛본 레바논 음식 루나는 한마디로 축제 같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각각의 재료가 원래 가진 향과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식사. 이 조합이 또 전부 비건이라니. 이제는 더 이상 "맛없어서.."와 같은 이유로 채식이 어렵다는 핑계는 댈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메인 토핑이었던 두부튀김이 정말 좋았다. 수분이 많은 두부가 이렇게나 완벽하게 튀겨지다니. 적당히 두께감이 있는 튀김옷 덕에 바삭한 식감이 즐거웠다.
요리는 귀찮지만 배달음식은 지겨울 대로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위샐러듀를 추천한다. 녹아내리는 날씨에도 어쨌든 끼니는 챙겨야 하니까.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며 가장 맛있고 건강한 방법으로 여름을 즐겨보길 바란다.
- 운영시간 :
매일 10:30 - 21:00
“호주식 커피요?” 오랜만에 만난 구동료가 데려간 곳은 호주식 커피를 하는 곳이었다. 일본식 돈가스, 미국식 피자 같은 건 익숙했지만 호주식 커피는 아무래도 생소했다. 생각해 보니 매일 커피를 마시면서도 별로 그 역사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는 거라곤 아메리카노는 미국 것이고, 이탈리아에선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신다는 딱 그 정도.
망원과 합정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커퍼시티에서는 호주식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실제로 호주에 살다 오신 사장님이 계신 이곳에선 오로지 커피 메뉴만 만나볼 수 있다.
주문한 음료는 아이스 플랫 화이트. 커퍼시티의 플랫화이트는 생각보다 커다란 잔에 담겨 나온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렇지만 실제로 이곳의 플랫화이트는 라떼와 큰 차이가 없다. 아이스로 주문했다면 말이다. 원래 플랫 화이트는 라떼보다 더 미세한 폼이 특징이다. 하지만 아이스로 주문 시, 폼을 올릴 수 없으니 당연히 차이가 없을 수밖에. 때문에 커퍼시티에서는 이 둘을 밀크커피라는 카테고리로 묶고, 같은 가격에 판매한다.
원두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 사장님이 직접 꼼꼼히 따져가며 계약한 곳들의 원두를 사용한다. 플랫 화이트로 맛보았던 원두는 마림버스의 차파다 디아만티나 브라질. 다크초콜릿의 깊은 풍미와 상큼한 끝 맛이 매력적이다. 특별했던 점은 커피를 마시기 전 물 한 잔을 먼저 내어주신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깔끔하게 입을 헹구고 매번 맛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은 배려일까나.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는 호주, 그래서 호주 카페엔 대부분 아이스 메이커가 없다고 한다. 사장님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그 나라는 정말 이상한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래서 단번에 호주에 가고 싶어졌던 걸까. 여름에도 줏대 있게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반바지를 입은 채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나라. 언젠가 그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보리라. 이렇게 또 기약 없는 다짐만 늘어간다.
- 운영시간 :
목~월 08:00 - 18:00
*화, 수 휴무
사실 ‘천상의 맛’같은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수식어가 붙었던 음식은 대체로 천상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험도 전에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표현이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놀라울 것도 없다. 어쨌든 의심의 눈초리로 카이막을 보게 된 건 이 오만한(?) 표현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아는 그 맛일 텐데'라는 마음 반, 조금은 기대를 걸어보는 마음 반으로 카이막을 먹으러 갔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모센즈 스위츠는 카이막을 비롯한 중동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이다. 실제로 중동 요르단 지역의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모센에게 직접 오래된 레시피와 노하우를 전수받아 디저트를 만든다고 한다. 가게는 작은 편인지만 구석구석에선 중동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소품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내부가 일반적인 카페에 비해 협소한 편이기에 방문하게 된다면 미리 참고할 것.
카이막을 먹으러 갔으니 카이막을 주문했다. 카이막은 오랜 시간 우유를 끓여 만든 크림이다. 메뉴판의 설명에 따르면 최고급 버터의 가장 맛있는 맛과 최고급 생크림의 가장 맛있는 맛만을 더해 몇 배를 곱한 맛이라고. 최고급의 무엇!도 아닌 거기에 몇 배를 곱하기씩이나 한 맛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점점 알쏭달쏭 해지는 마음을 안고 카이막을 기다렸다.
카이막을 주문하면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빵과 꿀이 나온다. 식감을 위해 잼처럼 펴 바르는 것보다 얹는 편이 좋다는 사장님의 안내대로 따끈한 빵을 조금 떼어 꿀과 카이막을 얹어 먹었다. 꾸덕꾸덕한 그릭요거트 같기도, 부드러운 크림치즈 같기도 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깔끔하고 담백한 크림의 맛이 뭐랄까... 정말 처음 경험해보는 맛이었다. 우유의 잡내도 없고 약간 몽글몽글한 식감도 느낄 수 있는 게 함께 제공되는 달콤한 꿀을 더하면 카이막 특유의 고소한 맛을 극대화된다. 따끈한 빵과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천상의 맛'을 결정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카이막은 분명 좋은 디저트였다. 장벽이 높은 중동 음식치고 꽤 친숙한 맛이라 반가웠고, 또 아는 맛과는 묘하게 다른 식감이 매력적이었다. 크림과 버터 치즈 중 무엇이라도 좋아한다면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 운영시간 :
매일 12:00 - 22:00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는 남의 나라는 늘 흥미롭다. 정말 그런 걸까? 사실 증명해낼 방법도 당장 없지만, 우리는 쉽게 "유럽 같아", "미국 같아" 이야기를 하며 감상에 젖는다. 언젠가 올 그날을 꿈꾸는 마음으로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한 칸을 내어주는 일, 이런 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