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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Mar 28.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34

##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다.

"내가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날카롭고 예민한 나의 성질머리가 성을 내더니 몸살이 오고야 말았다. 바라나시에 온 첫날부터 한국에서 챙겨 온 종합감기약을 다  먹었는데도 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열이 펄펄 끓거나 콧물이 줄줄 흐르는 감기몸살은 아니었다. 뼈 속으로 은근히 파고드는 한기가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안개처럼 축축하고 희읍스름하게 온몸을 감쌌다.

 

 찜질방에 들어가 땀이라도 쭉 빼고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거운 담요에 성근 홑이불을 씌워놓은 이불은 뽀송뽀송한 느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속과 겉이 따로 놀아 힘없이 잡아당기면 얇은 거죽만 따라 올라왔다.. 얇은 판자 위에 얹힌 매트리스는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눅눅했다. 하얀 광목에 풀을 먹여 다림질한 빳빳한 엄마의 목화솜 이불이 그리웠다. 그 안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가벼워져 개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긴 인도의 바라나시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것은 현실을 더욱 서글프게 했다. 내가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아쉬운 대로 묵직한 이불을 덮고 정오까지 누워 있었다. 참새들이 불안해할까 봐 오래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늘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일어나지 않으니 참새들도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쯤 침대에서 뒹굴거릴까 생각을 했지만 음침한 동굴보다 따스한 햇빛이 나을 듯했다. 더구나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시간은 손을 대자마자 달아나 버려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겼다.

"꽃을 파는 사람도 꽃을 사는 사람도 꽃처럼 웃지는 않았다. "


 

참새들과 다사슈와메드 가트 뒤쪽에 있는 다슈와메드 로드로 나갔다. 아침마다 배에서 내려 짜이를 마시기 위해 걸었던 곳이었다. 아침에는 휑하던 바자르가 한낮이 되면 노점상인들로 붐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꽃을 팔고 있는 상인들이었다. 점포를 가진 풍채 좋은 남자가 한아름의 배를 끌어안고 화려한 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자세로 꽃을 팔고 있었다. 사원의 신들에게 바쳐 지거나 의식에 사용되는 꽃들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탐스럽게 누워 있었다. 길가에도 제법 긴 꽃시장이 열려 있었다. 커다란 숄을 뒤집어쓴 상인들은 맨바닥에 앉아 검은 비닐 화분에 담긴 모종과 짚으로 감싼 꽃다발을 팔고 있었다. 소박한 들국화를 닮은 꽃들이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꽃을 파는 사람도 꽃을 사는 사람도 꽃처럼 웃지는 않았다. 아름다운 꽃을 파는 상인에게서 환한 미소를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선택을 강요하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는 상인이나 아름답고 싱싱한 물건이면 아무 문제없다는 듯한 손님도  말에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롭고 무덤덤한 표정의 그들에게 낯섦을 넘어 소외감을 느끼는 내가 이상했다.

"어느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눔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무료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SRI KHICHURI BABA TEMPLE"이라고 쓰인 사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커다란 솥 안에는 노란 달(Dhal) 같은 수프가 맛있게 끓고 있었고 사원 앞쪽으로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반대편 길가에도 사원의 무료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였다. 그들의 뼈 속을 파고드는 한기는 허기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뱃속이 비면 더 추울 텐데...... 그들은 담요 같은 커다란 숄로 허기까지 달래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눔을 행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를 더 가지려고 누군가의 목을 조여 올 때 자신이 가진 하나를 나누고 또 나누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이도 있다.

 

 올해는 어느 해 보다 포근한 겨울을 맞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겨울을 생각하면 초봄 같은 날씨에 얼어 죽는 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3월 말부터 6월까지의 40~50도를 육박하는 혹서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엄마, 그런데 사람들은 춥다면서 왜 양말은  안 신어?"

"나도 이해가 안 돼. 머리는 꽁꽁 싸매면서 신발은 여전히 맨발에 쪼리를 신고 있잖아!"


 참새들은 인도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나도 그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추워서 털모자를 쓰고 털 조끼를 입고 있으면서도 신발은 대부분 쪼리를 신고 있었다. 맨발이 익숙한 그들의 발이 오랜 시간 노출되어 단련이 된 것인지 발을 덮는 신발을 살 여유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앞이 막힌 신발이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앞이 뻥 뚫린 슬리퍼도 아닌 양말을 신기도 불편한 쪼리를 신고 다니는 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여름에 인도에 왔을 때 처음으로 쪼리라는 것을 신어 보았다. 발가락이 아파 못 신을 줄 알았는데 신다 보니 그럭저럭 신을 만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도 챙겨 왔지만 여름과 다른 건조한 날씨에 며칠 신었더니 발뒤꿈치가 쩍쩍 갈라지고 굳은살이 박여 통증이 왔다. 갈라진 틈 사이로 새까만 먼지가 끼어 나의 두 발은 보기 흉하게 망가져 있었다.


 신체 중에서 가장 더럽고 천한 발에 대한 그들 나름의 어떤 전통이 있는 것일까? 오장육부를 담고 있고  우리 몸을 지탱해주는 귀한 발을 천대하는 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없었다.


 인도의 겨울 채소시장은 풍성하고 싱그럽다. 인도는 물건을 개수로 팔기보다 구매자가 원하는 만큼의 채소와 과일을 녹슨 양팔 저울에 달아 판다. 가끔 전자저울을 사용하는 상인을 만나기도 하는데  덤 없이 정확하게 값을 받는다. 알루(감자)를 비롯하여 베간(가지), 빨락(시금치), 반드 고비(양배추), 풀 고비(콜리 플라워), 타마타르(토마토), 고추 등등 풍성한 사브지(Sabji 채소)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생각 같아서는 신선한 채소들을 사다가 내 입맛에 맞게 버무려 먹고 싶었다. 양념도 구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김치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인도 식당에서 주는 곰삭은 양배추 김치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싱싱한 채소를 보니  이곳에 눌러앉을 것처럼 욕심이 생겼다. 초고추장에 버무린 새콤달콤한 오이도 아삭아삭한 파프리카도 먹고 싶었다. 살짝 데친 가지나 시금치를 씹는 식감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입은 쓰고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다.


 겨울 인도는 과일도 풍성했다. 구아바, 파파야, 바나나, 망고, 오렌지, 사과, 포도, 감자처럼 생긴 차꾸, 딸기, 배, 석류까지 다양하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노랗게 익은 구아바와 오렌지였다. 시장을 지날 때면 구아바의 달큼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40 루피면 어른 주먹만 한 구아바 8~9개를 살 수 있다. 인도에서는 구아바를 반으로 잘라 그 안에 소금을 살짝 뿌려 판다. 그 맛은 찝찌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나지만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참새들은 구아바의 진한 향도 싫어해서 오렌지를 주로 먹었다. 하지만 오렌지는 우리나라 귤에 가까운 맛이 났다. 새콤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기대했던 참새들은 밍밍한 귤 맛에 실망했다. 그래서 큰 참새는 청포도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오렌지에 비하면 청포도는 너무 비싼 과일이었다. 석류는 생과일주스로 많이 먹었다. 우리들 모두 과일을 좋아하는데 나는 향이 진한 구아바나 파파야를 좋아하고 큰 참새는 새콤달콤한 청포도나 레몬을 좋아했다. 작은 참새는 향도 맛도 강하지 않은 수박이나 바나나를 좋아했다. 과일 하나에도 취향이 다른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여자 셋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내가 산 가격이 가장 좋은 가격이지만 가능하다면 적은 돈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좋지 않은가!"

 

큰길에서 가지처럼 뻗어 있는 좁은 골목 양쪽에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장신구와 다양한  향신료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실크가 유명한 바라나시 답게 100 % 실크를 자랑하는 천 가게들이 있다. 주인장들은  골목 입구까지 나와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한다.  주인장을 따라 가게로 들어가면 주인은 가게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낼 심산인 듯 관심을 보이는 물건들을 망설임 없이 끄집어낸다. 그렇다고 바닥에 가득 쌓인 물건들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 때문에 괜히 내게 유리한 흥정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흥정은 필수다. 주인장이 부르는 값에서 반을 잘라내고 시작한 적도 있다. 물건을 살 때는 될 수 있으면 과한 호감을 보이면 안 된다. 흥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덤덤하고 꼼꼼하게 물건을 살펴야 한다. 내가 산 가격이 가장 좋은 가격이지만 가능하다면 적은 돈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좋지 않은가!


 인도 여인들의 전통의상인 사리 구경도 해 볼만 하다. 재미있는 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사리를 입혀놓은 마네킹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꼬질꼬질한 모양새도 그렇지만 사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산발한 채로 쇼윈도에 서 있다. 옷에 맞게 머리라도 잘 빗어 넘기면 더 보기 좋을 텐데 주인장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았다. 그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인 사리를 보는 황홀한 유혹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인도의 여인들은 반짝이는 화려한 장신구나 옷을 좋아한다. 치렁치렁한 팔찌를 대여섯 개씩 끼고 다닌다. 금빛 , 은빛 실로 수놓은 화려한 사리는 여인들을 꿈꾸게 하는 듯했다. 


"타인의 삶은 우리 삶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참새들은 일식당 "메그"에서 먹은 점심이 부족한 듯했다. 설탕물에 풍덩 빠진 달콤한 스윗과 다히를 보더니 먹고 싶어 했다. 단것을 싫어하는 나와 큰 참새는 요플레를 닮은 다히를 먹고 초콜릿 걸 작은 참새는 스윗을 먹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스윗은 달지 않아 서너 개는 먹을 수 있는데 시장에서 파는 스윗은 한 입 베어 물면 물컹한 설탕물이 흘러나오거나 단맛이 너무 강해 속까지 달큰해져 많이 먹을 수가 없다. 고급 스윗은 가격차이가 많이 나지만 선물용으로 좋고 달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스윗을 맛볼 수 있어 좋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바라나시의 시장은 왁자지껄 요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장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이 전해져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타인의 삶은 우리 삶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동굴 밖을 나오길 잘 했다. 시장에서 나와 가트에 앉아 따스한 햇빛을 받으니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남은 시간 우리는  방에서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조급해하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천천히 긴 날숨으로 후~~ 내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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