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정금 #1
주말, 배가 제법 나온 아내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과 대치 중이다. 어지러울 텐데, 조금 쉬었다 하라는 남편의 채근에 별 반응이 없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양옆으로 구르던 아내가 일어나 내게 보여주는 목록은 시월의 어느 날에 만나기로 약속한 아가의 용품들. 생소한 턱받이, 손싸개, 발싸개, 젖병 건조기 등등.. 이 빼곡히 리스트업 되어 결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제 버튼이 눌리고, 카드 결제 알림 문자가 떴고, 우리는 또 한 발 부모라는 이름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아가가 생기고, 부모님의 주된 이야기는 우리의 어릴 적에 대한 회상이다. "초음파가 웬 말이냐?" 열 달을 꼬박 성별도 모른 채로 뱃속의 나 때문에 애썼을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이 없던 시절, 풍족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출산준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느 날 시장에 가서 양말 하나, 또 어느 날 내복 한 벌. 엄마 아빠에게 내 존재는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의 내가 아가에게 느끼는 행복과 설렘이었을까?
볼록 나온 아내의 배를 쓰다듬다 보면 자주 뭉클하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인생이 태어나는 위대한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에 뭉클하고, 그 인생을 품고 애쓰고 노력하는 또 한 명의 귀한 인생이 내 곁에 있음에 뭉클하다. 이런 뭉클함을 선물해준 것만으로도 우리 아가는 이미 축복인 것이겠지.
아가 용품을 고르는 일은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오고 가게 하는 무언가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다 보면, 예비 아빠인 지금의 '나'에 조금 더 성실할 수 있게 된다. '나'라는 우주가 '너'라는 우주를 만나 '아가'라는 우주와 조우하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더 깊숙이 매료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