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외취업에는 성공했지만, 나는 고독했다.

by 유정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를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자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외국어에 대한 로망으로 일본에 왔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일본어 실력을

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취학비자(어학원 비자)를 받아

다시 일본에 오기로 결심했다.


한국에 잠시 귀국해 절차를 밟고

어학원에 등록한 뒤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새로운 일본 생활은

어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며 공부를 병행했고,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

9개월간의 어학원 생활은

졸업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후 전문학교에 진학해

유학비자를 받고 학업을 이어갔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여전히 고민거리였다.


그러던 중 일본에 나와 있던 한국 회사에
별다른 계획 없이 지원을 해 보았는데
뜻밖에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내가 제일 자신 없던
관리부의 회계·경리 업무로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시 한국은 취업난이 한창이었고

혼자 일본에서 취업에 성공한 나는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아쉽지 않은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그 자랑스러움이

나를 깊은 고독으로 데려갈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취업을 하게 된 나였지만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여느 신입사원처럼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다.


하지만 취업한 지 3개월 만에

미국에서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각 기업마다 인원 감축이 시작되었다.


가뜩이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의 자리는 불안정했고

그 사태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늘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듯

마음은 좌불안석이었지만

환율이 오르며

내가 벌어 한국에 보낸 돈은

부모님께 넉넉한 용돈이 되어 돌아갔다.


울기만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경제상황 속에서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과장님의 과한 잔소리를 견디고

업무팀으로 부서 이동을 겪으며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나는 회사 생활을 나름 즐겁게 해냈다.


회사 생활이 즐거울 수는 있지만

일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을 정도였다면

내 생활에 ‘재미’라는 것이

얼마나 없었는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분명해졌다.


일본어 실력은 점차 늘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만큼 편해졌고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돈과 친구였다.


한국인 친구들은

비자가 끝나 하나둘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만 혼자 남았다.


월급은 받았지만

한국에 돈을 보내고 나면

생활비 쓰기도 빠듯했다.


그래서 쉬는 날에는

항상 집에서 뒹굴거리며

강제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공휴일이 많은 일본에서

나는 점점

‘휴일이 싫은 사람’이 되어갔다.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 외로웠고

그 외로움은 점차 깊어져

고독이 되었다.


그렇게 고독해질 때면

집 앞 카페에 가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내 생활 속에서

가장 생기가 도는 시간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와 말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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