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진으로 흔들린 내 마음

by 유정

일본에서의 회사 생활은

나에게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처음 입사해 관리부에서 일하다가

인원 감축으로 업무팀으로 발령을 받았고,

그곳에서 맡게 된 일이 항공수출 업무였다.


일본 제조사의 물건을

한국으로 보내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 일이 재미있었고

나와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매일 일본과 한국 거래처 사이에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가 핸들링한 물건을

잘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꽤 뿌듯했다.

그럴 때면

이 일이 내 천직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은 너무 많았다.


일본은 주말에 일을 하지 않기에

금요일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몰렸고

야근은 늘 정해진 일상이었다.

까다롭거나 귀찮은 일도 주로 내 몫이었다.


그 상황이 싫으면서도

그 일이 아니면

외로운 시간을 메꿀 다른 것이 없었기에

나는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고

회사에서는 일과 사투를 벌이며

버티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마저도 점차 익숙해져만 갔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며

일에 익숙해지고

금전 상황도 조금 나아지자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보기도 했다.


소개팅도 해 보고

동네 친구를 사귀려

포틀럭 파티에도 나가 보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고독과 결별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취업 후 3년쯤 되었을 무렵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늘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떠 있는 듯한 내 삶이 불안했고

적어도 결혼은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비자가 끝나면 돌아가야지

막연히 마음먹고 있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별한 계획도 기반도 없던 나는

자랑스러운 딸에서

천덕꾸러기가 될까 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이 이어지던 나날의

어느 금요일,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날 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야근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마무리를 하던 그 순간,


땅이 흔들렸다.


일본에서 지진은

일상처럼 흔한 일이어서

처음엔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평소라면 몇 초 후면 끝났어야 할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그제야 모두가

심각함을 깨닫고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한참이 지나도 멈추지 않자

답답함에 고개를 들었고

책상 옆 통창 너머로

심하게 휘청이는 도쿄타워가 보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재해 앞에서

나는 무력감과

낯선 공포를 느꼈다.


그날

도쿄 전역이 정전되고

교통이 멈췄다.

휴대전화도 끊겼다.


아직은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절이라

회사 인터넷 전화로

부모님께 겨우 연락했는데

이미 뉴스 속보로 상황을 알고 계셨다.

그제야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결국

그날 저녁

회사에서 집까지

4시간을 걸어 돌아가야 했고

밤새 이어지는 여진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이후로는

여권과 필수 소지품을

큰 가방에 넣어 다녀야 했다.

그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도 지쳐갔다.


하지만

그 지진은

불안함만 남긴 건 아니었다.


전례 없는 큰 지진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갈

‘합당한 이유’가 생겼다.


부모님은

혼자 사는 나를 걱정하며

어서 돌아오라 하셨고

나는 못 이기는 척

한국행을 결정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 기뻤다.


그것은

이제 돌아가도 된다는

스스로에게 주는 허락 같았다.

이전 04화#4. 해외취업에는 성공했지만, 나는 고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