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by 유정

도쿄에 도착한 나는

내가 도쿄라는 도시에 서 있는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앞으로 나에게 닥칠 수많은 어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새로운 곳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움은 생각보다 꽤 오래갔다.


그 당시의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그 선택을 실행에 옮긴 나 자신이

이유 없이 자랑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느꼈던 자랑스러움은

한껏 높아진 자기효능감이 가져다준

부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내 결심을 의심해 볼 새도 없이

이내 나는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일본어라고는 겨우 “여기 가고 싶은데요.”라고

물어보고는 대답을 잘 알아듣지 못해

15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 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어디에 내놓기도 부끄러운 실력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내가 내린 결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큰 과제가 내 어깨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일본에 간 지 2주 만에 나는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유학생 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신주쿠의 한 규동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추가로 하게 되어

아르바이트를 두 탕 뛰는 날에는

짧게는 11시간, 길게는 15~16시간 일을 하며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물론 그렇게 일하고 나면 급여가

금액적으로는 한국에서 중소기업

신입사원 초봉 월급보다 많았고,

당시 일본은 아르바이트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기에

남는 시간에는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느 새 내 기억 속에는 참 좋은 날들로 남아있지만,

늘 행복하기만 한 것도

늘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어가 서툴러

직원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일본인 손님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다른 일본인 직원을 찾아 부탁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들이 나를 얼마나 귀찮게 여겼을지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또 회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는 2~3시간이나

듣고 있어야 하는 외로운 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편의점에서 일할 때의 일이었다.

어떤 손님이 와서 어떤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나는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조차 몰라

“그건 먹는 건가요? 물건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손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이름표를 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 외에도

핸드폰 가게에 문의하러 갔다가

일본어를 잘 못하니 중국인 통역사를

연결해 주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좋은 인연도 있었다.


외국에 나와 사는 것이 대견하다며

밥을 대접해 주던 편의점 동료인

일본인 할머니의 친절함을 경험하기도 했고,


외국 유학생들 중 한국인이 제일 성실하다면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최우선으로 채용해 주며

호의적으로 대해주던 편의점 사장님도 만났다.


그렇게 미처 계획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했던 1년의 시간을

나름대로 알차게, 즐겁게 마무리하였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기회라는 것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고,

나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 보이지 않았던

‘도전’과 ‘가능성’이라는 존재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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