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를 다시 쌓기 시작하다.

by 유정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식을 기다리던 겨울,

낯선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모든 학교의 대면 수업이 금지되고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내가 꿈꾸던 대학원 생활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업도 갑작스럽게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학습에 대한 욕구도, 집중력도 떨어졌다.

그렇게 1학차는

비대면 사회에 적응하면서 훌쩍 지나갔다.


2학차가 되자

임상실습에 대한 압박감이

슬슬 생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실습처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학과 카페에 간간이 올라오는

구인 공고를 수시로 확인하며

겨우 실습을 이어나갔다.


미술치료라는 낯선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실습을 통해

내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마음대로

실습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버거웠다.


그럴수록

‘준비되지 않은 치료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나를 끈질기게 뒤흔들었다.


새로운 도전에서 실패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

나의 간절한 마음들이 불안함으로 돌아온 시간들이었다.


그런 불안 속에서도 유일한 숨구멍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배우러 가는 시간,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실습 중심 과목의 수업이었다.


실습이 중심인 과목만

제한적으로 대면 수업이 가능했기에

그 시간만이 동기와 선후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각자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고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금방 끝날 거라 믿었던

코로나 상황은 장기화되어갔고

어느새 우리는

그 상황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에서

인턴치료사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인턴치료사가 되기까지

한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자기소개서에

자기소개 대신

‘내가 왜 인턴이 되고 싶은지’

‘이 자리가 나에게 왜 간절한지’

에 대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간곡한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인턴치료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단순히 실습의 기회를 얻은 것 이상의 의미였다.


회사를 그만둔 후,

갈 곳을 잃었던 내가

기대했던 학교마저 정기적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을 겪은 후

드디어 다시 갈 곳이 생긴 것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마치 무언가를 해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매주 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재촉하여 어린이집을 보낸 후

출근하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센터에 도착하여 치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의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내담자는 거의 없었지만,

치료실에 내가 그 시간만큼은

주인처럼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치료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비로소 내가 미술치료사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작은 방은 어느새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갈 길이 멀었다.


발달재활사로 인증을 받기 위한

과목들을 수강해야 했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며 수련도 해야 했다.


내 앞에 해야 할 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동안

아이도 기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조금 더 큰 어린이집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아이를 돌보는 일과 공부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경계를 찾지 못한 채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그즈음, 이제 막 아이가 다시 내 품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 품으로 돌아와 준 아이의 선택에

또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새로운 선택을 했던 그때,

어둠 속에서 겨우 빛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으며 맴도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과거와는 달랐다.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깨어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를 살피고

아이를 살피고

내 주위를 살피며,

남들보다는 천천히

한 발씩 내딛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과거보다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조금 더 관대하게 품어주기 시작한 것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몰아붙이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를 아끼는 방법을 찾아가는

미숙하지만 작은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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