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얻은 것은
비단 지식만은 아니었다.
내 내면을 바라보는 것,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등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값진 마음의 양식을 얻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에 배움이 새겨지는 동안
다른 한쪽에는 어려움도 함께 새겨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육아와 공부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듯 균형을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러면서도 가끔,
내 현실을 바라보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임상실습을 해내는 것도 그렇지만
동시에 경제적인 부담감도
나에게는 마음의 짐이 되어갔다.
임상실습을 간간히 해나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실습은 ‘열정’이라는 이름의 무급 노동이었고,
운 좋게 케이스를 맡게 되면
미술재료를 사비로 준비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그 문제들은 가슴 한켠에 얹힌 돌처럼
점점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실습뿐 아니라
수련에 필요한 워크숍,
상담사에게 필수인 슈퍼비전과 자기 분석까지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이어지는 생활은
경제적 부담을 넘어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학비 또한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기만 하였다.
대학원에서 비로소 내 꿈을 찾았다는 성취가 있었다면,
그만큼 현실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그러던 중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들려주신
상담사들의 처우에 대한 일화가 있다.
지인의 수입이 “300만 원”이라는 말에
“매달 300만 원이면 적지 않은 돈 아닌가요?”
라고 했더니
“매달이 아니라 연봉이 300만 원”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저 남의 이야기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맴돌았고
머지않아 현실처럼 다가왔다.
어려움이 어깨를 짓누를수록
마음 깊숙이 눌러두었던 후회와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연봉도 더 올랐을 테고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겠지.’
한때 스스로를 멋진 커리어우먼이라 여겼던
시절이 떠오르면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여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다.
희망은 저 멀리 흐릿해지고
미련이 성큼 다가와 서 있던 어느 날,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상사에게 연락이 왔다.
파트장 자리에 추천해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동료에게서도
구인 중인 회사에 나를 추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들의 배려와 잊지 않아 준 마음은 고마웠지만,
미련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복직이라는 유혹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건
작은 아이의 큰 마음이었다.
아이와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다이소에 들러 장난감을 사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ㅇㅇ이는 언제가 제일 행복해?”
아이는 말했다.
“지금.”
그 말에 나는
아이스크림과 장난감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이유는 달랐다.
“엄마, 아빠랑 같이 있잖아.”
아직은 조그만 아이지만
가끔은 나보다 더 깊은 마음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 순간,
흔들리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도
아이의 이런 순간을 보지 못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부, 미래, 육아, 그리고 돈.
모두 가볍지 않은 문제들이었지만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다시 실패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닥친 이 상황들을
더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저
내 앞에 놓인 것들에 집중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기회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나도 기회란 것을 만났다.
그때는 몰랐다.
우연한 기회가 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갈지를.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훨씬 더 먼 길을 돌아왔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