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가장 빛났던 날 뒤의 긴 그림자

by 유정

임상실습에 매진하던 어느 날,

동기 선생님의 취업소식을 듣게 되었고

축하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조바심이 차올랐다.

동기 선생님은 ‘급구’ 공고만 공략해 보라고

자신의 취업성공의 팁을 알려주었다.

그 말대로 지원서를 넣던 중

한 센터에서 전화가 왔고

곧바로 면접이 잡혔다.

경력도 없는 나에게

면접을 제안한 이유가 궁금했다.

고마우면서도 어딘가 의아했다.

면접 자리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왜 저에게 면접을 보자고 하신 건가요?”

센터장은 이렇게 답했다.

“아이를 직접 키워본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이론도 중요하지만, 저희는 보호자를 만나는 힘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면접은 곧 취업확정이었고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면접 후 돌아오는 그 길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기만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새롭게 시작한 길에서

꿈에 그리던 미술치료사로 취업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출근 날까지

‘적임자가 생겼습니다. 안 나오셔도 됩니다.’

라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졸였다.

첫 출근날

센터로 향하던 발걸음은

두려움과 설렘, 긴장감이 뒤섞여

어떻게 갔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첫 내담자인 아동을 만나고

두 번째 아동을 만나면서

나에게도 ‘경력’이라는 시간이 새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차에 비해

많은 아동들을 만나면서

나를 갈아 넣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그저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슈퍼바이저 선생님의

‘너무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오래갈 수 없다’는

조언도 들리지 않았다.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의 소개로 또 다른 일을 맡게 되었고,

대학원 시절 발표했던 사례에 대해

“힘이 있는 상담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한마디는

‘너는 이제 인정받는 치료사가 될 거야’라는

확신으로 왜곡되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다.

나는 이미 성공한 상담사라도 된 듯 들떠 있었다.

그 이후로 일이 점차 늘어났고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갔다.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 보니 점차 내 감정이, 내 체력이

닳아가는 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버텨나가기 바쁜 시간이 되어갔다.

그 사이 아이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이도, 나도 낯선 공간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재취업, 아이의 초등입학, 그리고 몇 년을 기다려온 이사까지 모두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해 내야 하는 일들이었다.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며

버티듯 하루를 넘기던 어느 날,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지침이 나를 찾아왔다.

형태는 달랐지만 분명 예전에 만나본 적 있는 감정이었다.

번아웃.

반갑지 않은 그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느 순간, 나는 다시 어두운 터널 앞에 서있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비로소 내가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

다시 번아웃을 마주하고서야 늘 앞만 보고 달리다 지쳐 쓰러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앞으로는 내 삶의 속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그 후로 번아웃에서 회복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삶에는 속도보다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늘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깨닫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그 덕분에 달릴 때와 멈출 때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한 치료사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