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겪고 싶지 않은
번. 아. 웃을 지난 뒤,
내 삶을 다시 설계하는 마음으로
아주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빼곡했던 스케줄을 정리하고
일상의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였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일을 하며
남은 시간에는 취미생활을 하였다.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코바늘 등을 하고,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비어있던
내 안을 채우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그런 시간들이
어색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를 품고 있었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 많아도 될까’
마음 한쪽에 불안함을 간직한 채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것들을 해 나갔다.
그때쯤인 것 같다.
늘 과거에 대한 미련을 바라보고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불안정한 나와 이별하는 법을 익힌 것이.
이론서에서만 읽던 ‘Here & Now’를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익혀보기로 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보았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야.
살아보지 않고서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어’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연습을 해 나갔다.
동시에 나 자신을 조금 더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도 해나갔다.
‘열심히 했잖아.
놀지 않고 했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한 것은
너만의 문제는 아니야.’
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서서히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보살펴야 하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가는 걸 느꼈다.
점차 내 안에 묵직한 무게가 생겨
더 이상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내담자를 만나는 시야도 넓어져갔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온정적인 감정이
나에게는 더없이 따뜻하기만 했고
그런 감정들이 내가 만나는 내담자들에게도
전달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때 비로소 내 마음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하늘은 파랗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지천에 피어있는
그 풍경이
내 마음에 펼쳐진 것 같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나오는 동물들처럼
내 마음도 슬슬 기지개를 켜며
움츠러들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나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마주 보았다.
그 문제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었다.
그제야
이런 변화를 겪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 올 시련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내 앞에는 다시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작은 오솔길이 펼쳐졌다.
그 길을 따라
나는 거북이처럼,
때로는 소처럼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나아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