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빛’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시작

by 유정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백수가 되었다.


다행히 퇴사 전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 몇 달간의 여유는 생겼지만

내 마음에는 여유가 많지 않았다.


우선 아이와의 시간을 갖으며

관계회복을 해야 했고

동시에 인생의 다음 장을

어떻게 써 나갈 건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만 했다.


살아올 때는 정답 같았던 내 인생이

막상 끝나고 나니 오답투성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음 선택은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는 심리상담센터와 미술치료 등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심리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었고,

미술은 내가 꼭 함께 하고 싶은 것이었기에

내 관심은 슬며시 그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어차피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쉽게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일이라도

막상 하다 보면 나랑 맞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일단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해 보고

나랑 맞지 않으면 그만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하였다.


나름의 결심을 한 후 곧장

근처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개설되어 있는

심리상담사 자격증 과정을 신청하여

일주일에 하루 3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심리이론이나 심리관련된 서적을 거의 본 적은 없어

지식이 전무했던 나였지만

첫 수업에 들은 가족치료 이론은

마치 모두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

자연스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가족 간의 문제가 나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진 문제의 원인이

나 자신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부모님 사이에 끼어 힘들 수밖에 없었던

내 입장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공부는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특히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업 후에 휘몰아치듯 올라오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작은조각이 되어 떠다녔고

그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음의 어지러운 생각들이 정리되어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런 과정들이

미술치료에서의 몰입과 자기탐색의 과정인 것은

나중에 미술치료사가 되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심리학은 나에게

흥미로운 학문으로 다가왔고

곧 내가 가야할 길인 것 같은 생각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1년 동안 2학기에 걸친 수업을 듣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서 대학원이라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그 길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정보를 찾고, 입시 설명회를 다니며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였고

결국 두 곳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중에서 내가 너무나 바라왔던

미술치료 전공을 선택하여

드디어 미술치료사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입학하기까지

시간은 어김없이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 모든 시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일찍 데리고 올 수 있었고

그때 엄마가 일찍 와서 좋아하던 아이를 보며

'그동안 혼자 매일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마음이 아려왔다.


아이는 매일 일찍 하원하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이 남아있는 시간에

자신이 먼저 나올 수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하여 나오는 모습을 보면

회사를 그만둔 게 아깝지 않을 만큼 뿌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내가

망망대해에 목적지 없이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느껴졌다.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좋아하는 가방을 들고

하이힐을 신고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갈 곳을 잃어

허전해진 내 마음을 다독이며

내가 선택한 현실에

적응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생산적인 일을 해내던 내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니

삶의 색이 칼라에서 모노톤으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삶의 즐거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일본어 스터디를 열고,

영어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와 함께 문장을 읽고, 단어를 외우는 시간 속에서

‘아, 나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감각을 붙잡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고 함께하는 기쁨은

엄마로서 나를 충분히 채워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유정으로서의 삶까지 온전히 채울 수는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와 나로서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던 그 시간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늘 불안정한 현실에서 흔들리는 나는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가야 할 길 저 편에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빛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