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대략 5개월 만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해 데리러 가면 7시를 넘기는 날이 허다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아이를 돌봐주셨고,
덕분에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갔지만,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둘 중 누군가는 휴가를 내야 했다.
남편도 나도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선뜻 쉬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새벽에,
4시간 거리 지방에 계신 친정부모님을
급히 부른 적도 있었고,
병치레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을 때에는
아이를 들쳐 업고 KTX를 타고 가,
역에서 아이만 맡기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마음이 지쳐가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가던 어느 날,
마침내 내가 바라던 ‘팀장’이 되었다.
실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경험이 있다고 자부했고,
언젠가 임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꿈도 품고 있었다.
팀장이 되는 건 그 꿈의 시작점에 불과했다.
그 회사에는 여성이 팀장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야근은 당연했고,
한 달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고,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라도
일을 해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애썼다.
가능한 한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일을 미리 해두고,
업무시간에도 더 집중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면
일찍 귀가하는 날이 9시쯤이었다.
내가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남편은 혼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다.
퇴근하면 혼자 아이를 데려와
씻기고, 밥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밤 9시에 집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식탁 의자에 앉히고,
아이와 남편이 놀고 있는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퇴근한 나를 힐끗 보더니,
아빠와 하던 놀이를 그대로 이어갔다.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나 사이.
멀어진 만큼 두꺼워진 벽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남편과 아이,
서로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은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고,
그들 사이 어디에도 내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고자 했던 이유를 잊은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 시간들은 어느새 나를
빛 한 점 없는 깊은 터널로 끌고 가고 있었다.
아이의 무덤덤한 눈빛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나를 아프게 했지만, 어쩌면 그 눈빛이야말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엄마를 멈춰 세운,
한 줄기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 충격과 함께 우리 가족 사이의 벽을 인정하자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놓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질문 앞에 섰다.
과연,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한 끝에,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기 위해서.
나에게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다 같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온전히 쏟아부은 10년의 시간을
조용히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