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멋진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by 유정

아이가 뱃속에 생긴 후,

내 삶의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임신 초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이 잦았고

그로 인해 병원을 자주 가야만 했다.


당시에는 육아휴직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탓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출산휴가 3개월 후 복직할지,

아니면 이대로 퇴사할지

그 고민이 마음 언저리에 서성이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아기를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기의 양육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일단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조금 키우고

다시 복직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배가 제법 불러온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둔 뒤

문화센터를 다니고, 그림을 배우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았다.


그런 생활이 제법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출산 후 복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9주 차 검사를 갔을 때,

이미 양수가 새고 있어서

예정일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여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모든 출산의 과정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출산의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울음을 터트렸다.


간호사가 아이를 내 가슴에 올려주었고

그 얼굴을 처음 마주한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아가야! 무사히 잘 나왔구나. 내가 네 엄마야!’


방금 전까지 뱃속에 있던 아이가

몇 분 사이 세상으로 나와

내 가슴 위에서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존재에게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때의 감동은

아마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천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감고 잠만 자는

그 작은 존재가 얼마나 예쁜지,

바라보고만 있어도

한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갔다.


부족한 엄마를 배려라도 하듯

아이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50일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해서

수면이 부족하지는 않았고

낮에는 아이가 자면 나도 함께 쉬며

체력을 충전했다.


남편도 육아와 가사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풍문으로 들은 것처럼

힘들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금방 흘렀고,

반복되는 육아의 일상 속에서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속 깊은 곳의

복직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날 향해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을 하기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근처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어린이집에 전화 상담을 하면

아이는 대부분 4시 정도에 하원을 시켜야 한다고 하였고

나는 서울로 직장을 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7시 전에 하원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아이가 너무 어리니 엄마가 키우는 게 좋겠다”는 말,

“도우미를 구해보라”는 조언들.


그 어떤 말도

내 상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만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맡겨야 하는

내 현실이 비참하기도 하였고

내가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나는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울고 말았다.


그래도 복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커리어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했기 때문에

복직은 한발 물러설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 후로도 여러 어린이집을 알아보았고

다행히 아침 일찍부터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어린이집이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때가 아이가 120일이 조금 지났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린 아가였을텐데

그때의 나에게는

신생아였던 아이가 100일이 지나니

많이 컸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서

나는 복직을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복직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났고

나는 다시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게 되었고

동시에 워킹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린아이를 맡긴 나도 참 용감했지만

갑자기 엄마랑 떨어져 낯선 곳에서

적응을 잘 해낸 아이는 더 대견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불안감에 떠밀려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던 나와,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가야 했던 아이를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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