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도 찾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내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을 말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것 같고,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일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나는 왜 그런 일을 찾지 못했던 걸까.
어릴 때에 명절마다 친가에 일가친척이 모였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친할아버지 댁에서 모인 기억이 거의 없다. 친할아버지 댁에 모인 적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내 기억 속에 거의 없다는 말이다. 첫째 큰아버지댁에 모였던 것만 기억난다.
첫째 큰아버지께서 철학관에 가서 내 이름을 지어오셨다고 들었다. 첫째 큰아버지께서는 내 사주에 따르면 내가 판·검사, 군인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묻지 않으셨다. 사주가 그렇다고 하니 엄마도 내가 판·검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물론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별로 관심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내 사주에 판·검사, 군인밖에 없었을까. 더 많은 것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첫째 큰아버지는 그냥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오셨던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식사하다가 부모님께 여쭤봤다. 나는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재능이나 개성이 있었는지 말이다. 엄마는 “평범한 아이였지. 음악 분야에는 재능이 별로 없었는데 그림은 좀 잘 그렸던 것 같아. 나는 네가 공부를 해서 전문직이 될 줄 알았어”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에 전문직 이야기는 엄마의 바람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아버지는 “네가 초등학생일 때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에 보내서 가르쳐봤다. 그림은 좀 그렸던 것 같은데 음악 쪽에는 재능이 없었다”라고 하셨다. 나도 음악 분야에는 소질이 없는 것에 공감한다.
미술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그림을 많이 그려봤고 못 그린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화가가 되겠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 못 그리는 것 같았다.
미술 분야는 부모님이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릴 때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만화를 좋아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캐릭터가 그려진 책받침 위에 기름종이를 대고 그 그림을 따라 그렸던 적이 많았다. 이걸 보고 내가 잘 그렸다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미술학원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고 그림을 잘 그렸다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말이다.
슬램덩크 얘기가 나오니 한 장면이 기억났다. 중학 MVP였던 정대만은 부상 때문에 농구를 하지 못 하고 방황하면서 싸움을 하고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 친구들과 함께 체육관에 쳐들어왔다. 나중에 농구부 감독이 체육관에 들어왔는데 정대만은 주저앉아 울면서 농구부 감독에게 말한다.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요”라고.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만화 캐릭터인데도 배워야 할 점이 있구나 싶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것을.
또 아버지는 미술, 음악 외에 다른 재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네가 어렸을 때 글을 잘 썼어. 내가 출판사를 했으니까 글을 보면 대략 알잖아. 네가 어릴 때 독후감을 쓰면 문장력이 좋아서 글이 쉽게 읽혔어. 네가 쓴 독후감을 들고 다른 출판사에 가서 그 출판사 사람들과 같이 보기도 했다. 네가 중학생일 때에는 내가 집에 가져다 놓은 역사소설을 다 읽어봤어. 원래 그 나이 때에는 그런 책을 좋아하지 않잖아. 쉬운 내용의 책이 아니니까. 그리고 네가 섬세했다. 어릴 때 레고를 사주면 그렇게 좋아했어. 어른인 나도 레고를 가지고 이것저것 만드는 게 솔직히 어려운데, 너는 그 작은 것을 갖고 이것저것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지. 응용력도 있었고. 네가 전체적으로 보면 덜렁대는 것 같고 섬세한 편이 아니야. 그런데 한 가지 일에 재미를 느끼고 시작하면 엄청 섬세하고 꼼꼼하게 했어.”
마지막에 무언가에 재미를 느끼면 섬세하고 꼼꼼해진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할 것 같으니 넘어가자.
지금은 아니더라도 어릴 때는 글쓰기를 잘했던 것 같다. 중학생일 때 웅변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큰 학원은 아니었다. 원장님께 작문, 웅변 등을 배웠다. 그 학원에는 故 김대중 대통령과 원장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원장님이 故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문을 했다든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원장님은 내가 웅변은 몰라도 글쓰기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 재능도 제대로 계발하지 못했다.
내가 축구, 농구, 야구 등 운동도 많이 좋아했는데 부모님은 운동에 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 내가 운동을 좋아한 만큼의 재능은 없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어떤 분야에 재미가 있었는지 정리를 해보면 그림 그리기, 글쓰기, 운동, 무언가를 만들기 등이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이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이외에도 내가 찾지 못했지만 재능 있는 분야가 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넘어가고 하나씩 차근히 찾아보려고 한다.
이 중에서 내가 했던 일과 연관되는 것은 글쓰기였다.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 하는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였다. 반쯤은 나에게 좋은 길을 찾아갔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름 재능과 연관된 일을 했지만 나는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때까지의 인생을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지 않았다. 왜 내 삶을 바꾸고 싶었을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다. 정확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일과 관련된 다른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글쓰기라는 재능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다. 은행 잔고가 점점 줄어드는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말씀하셨다.
“네가 어릴 때부터 내가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서 정점으로 올라가 다른 사람들을 아래에 두고 사는 삶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 또 내가 돈을 적게 벌더라도 즐거워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네 마음이다.”
솔직히 둘 다 내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방법이다.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방법으로 살고 싶다. 두 번째 방법으로 인생을 살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깊게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수행하기 쉬운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