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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작가 May 04. 2020

'희로애락'

'공동체 사회의 소명과 주인의식'


한 소녀는 홀어머니 밑에서 착하고 자르게 자랐지만 길을 가다 성폭행을 당한 뒤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도를 일삼던 그 소녀는 어느새 전과 14범의 불량 청소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오토바이 절도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된 소녀는 판사 앞에서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하지만 판사는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범죄를 저지른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고로 본 판사는 오토바이 절도사건에 대해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이 아이만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라며 사회와 어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린 뒤 소녀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지시했다 합니다. 이어 판사는 '자 이제 날 따라 외쳐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녀는 판사의 지시대로 큰 소리로 외치다 그만 울음을 터뜨렸고 법정은 눈물마다가 되었다 했습니다. 알고 보니 판사가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뒤 소녀에게 해줄 수 있는 옳은 판결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잃어버린 소녀의 자존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무거운 형벌 대신 '일어나 외치기'라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던 것입니다. 판사는 펑펑 우는 소녀에게 다가가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다!'라고 따뜻한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이 판사의 특별한 판결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감동적인 명판결로 남아 있습니다.


법원의 상징물인 ‘정의의 여신상’은 저울과 칼을 쥐고 있습니다. 저울은 공평 ․ 칼은 정의 ․ 안대는 공정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면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조각상은  대부분 법원 앞에 서 있다 합니다. 하지만 서양이든, 동양이든, 눈을 가리고 있든.. 눈을 가리지 않고 있든.. 칼이 있든 없든.. 공평무사한 법 정신의 표상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세계 최초의 성문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이 기원전 1750년 무렵에 나온 이래 한동안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처벌하는 ‘탈리오 법칙’이 재판에 적용되었습니다. 증거 중심의 판결이 도입된 시기는 약 200년 전인데.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법관이 재판권을 갖고 고문이나 자백보다 증거를 중시하는 원칙을 확립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유, 무죄가 의심스러운 경우 무죄를 선고하는 ‘무죄추정의 법칙’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왔다 갔다 하는 ‘고무줄 판결’이나 이념적 편향에 따라 재판을 하게 되면 비난 여론이 높아집니다. 법관 스스로 형평과 정의를 잃으면 법이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국민의 인권을 위해 좌 ․ 우편향 없이 어떤 정치적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만인에게 평등한 공명정대한 법원의 판결이 필요합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합니다만, 만약 사건의 사례처럼 절도범으로 잡혀온 소녀에 대해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라면 엄격하게 법의 잣대를 적용하여 원칙대로 처벌할 수도 있을 것이고,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심정으로 소녀의 입장을 고려한 보다 유연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은 죄에 대하여 응당한 법의 처벌을 구해야 하는 것이 법의 정신 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악의 세계에 빠져있는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과 영혼을 구해내는 것일 겁니다. 자포자기 한 마음을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고, 사회에 대한 불신과 감정을 깨끗한 순백의 마음으로 정화시켜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것이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명이자 사명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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