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길에서 마주한 나의 예고편'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by 코끼리 작가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과 시간이 스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퇴근길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나는 한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때는 사무실을 환하게 밝히던 목소리, 회의실에서 단단한 눈빛으로 후배들을 이끌던 퇴직한 선배였다.


그러나 그날의 선배는 어딘가 작아 보였다. 어깨는 조금 더 굽어 있었고, 걸음은 조심스러웠으며, 말끝에는 이전과 다른 여백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여백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선배도 분명 나처럼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나보다 훨씬 뜨겁고 치열한 날들을 살았을 것이다.


야근의 불빛 아래에서 꿈을 붙들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조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버텼던 시간들. 그 시간의 무게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텐데, 세상은 퇴직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 모든 시간을 조용히 접어버린 듯했다.


회사라는 이름표가 떨어진 자리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길거리에서 마주한 선배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것은, 어쩌면 그의 초라함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 역시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함이 나를 설명해 주고, 직함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듯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 나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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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시작이라는 말 속에는 늘 막막함이 함께 따라온다. 매일 아침 향하던 목적지가 사라지고, 나를 필요로 하던 수많은 일들이 멈추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길고 깊은 질문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선배의 눈빛 속에는 그런 질문들이 잔잔히 흐르고 있는 듯했다. 동시에 묘한 평온함도 스며 있었다. 치열하게 달려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쩌면 체념과 수용이 뒤섞인 담담함. 나는 그 눈빛을 보며 함부로 연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직 나는 퇴직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마주할 나의 미래를 선배의 얼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었지만, 결국 같은 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젊음은 잠시 우리를 앞서 달리게 할 뿐, 인생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회사에서의 하루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

지금의 직함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결국 ‘어떤 자리’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퇴직 후의 삶이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면, 아마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경력 관리가 아니라 삶의 결을 다듬는 일일 것이다.


직함이 사라져도 함께 차를 마셔줄 친구, 일이 없어도 스스로를 지탱해 줄 취미와 사유, 누군가의 필요가 아니어도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길 위에서 만난 선배는 나에게 미래를 보여준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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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러움 속에는 두려움이 있었고,

두려움 속에는 연대감이 있었으며,

그 연대감 속에는 묘한 위로가 숨어 있었다.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이다.


젊음도, 중년도, 노년도 모두 한 사람 안에 흐르는 시간일 뿐.

언젠가 내가 또 다른 후배의 눈에 비칠 때,

부디 초라함이 아니라 단단함으로 남을 수 있기를.


세월이 나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

세월을 살아낸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그날 길거리에서의 짧은 만남은

어쩌면 인생이 내게 건넨 조용한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예고편을 가슴에 품은 채

오늘을 조금 더 깊이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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