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자리에서..수평의 자리로'

'내가 틀리수도 있다는 용기'

by 코끼리 작가


어릴 적 나는 늘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서울대공원 같은 곳에서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며 걷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괜히 발끝만 내려다보게 되곤 했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높이 보았고, 누군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재잘거렸다. 그 풍경은 유난히 따뜻했고, 나는 그 따뜻함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꼭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세상 구석구석을 함께 걷고 싶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았다. 화려한 리조트가 아니어도, 해외의 이름난 도시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다만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아이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랐다. 그 소박한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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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들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가족여행을 다녔다고 자부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챙겼다.


어쩌면 그것은 어린 시절의 결핍을 보상받고자 하는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내린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가족여행도 그런 마음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그 여행은 이전과 달랐다.


어릴 적 아이들은 내가 정한 일정에 군말 없이 따랐다. “이거 하자.” “저기 가자.”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움직였다. 나는 그것을 순응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랑이라 믿었고, 신뢰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쩌면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형성된 작은 위계질서였을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직급이 주는 권위처럼, 집 안에서도 ‘아빠의 말’은 일종의 규칙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사소한 일로 의견이 부딪혔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아이가—아니, 이제는 어른이 된 자녀가—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말했다.


그 말은 감정적인 반항이 아니었다. 논리적이었고, 합리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한 결론이었다.


순간, 마음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틀렸구나.’


그 깨달음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움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자녀에게 말했다.


“아빠가 생각이 짧았구나. 미안하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권위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자녀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리게만 보았고, ‘내가 더 잘 안다’는 생각 속에 가두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이후, 자녀는 더 이상 ‘내가 이끌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직이었던 관계가 수평으로 바뀌는 순간, 내 마음속의 공간도 넓어졌다. 아버지로서의 운신의 폭은 좁아진 듯했지만, 사람으로서의 시야는 훨씬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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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집에서 작은 쫑파티를 열었다.

함께 웃고, 여행 중 있었던 갈등을 솔직히 나누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앞으로의 시간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선택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채워가자고...


구정 연휴가 끝난 뒤 회사에 출근했다.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나이도, 직급도 한참 어린 후배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말은 또렷했고, 시야는 넓었으며, 발상은 신선했다.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나의 시간들이 순간 무색해졌다.


그때 깨달았다.


가정에서의 변화는 회사에서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사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나이와 직급을 앞세우는 순간 사람은 ‘꼰대’가 된다.


그러나 경험은 권위를 세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길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을 자랑하기보다, 후배들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존경은 직급에서 나오지 않는다. 겸손에서 나온다.


권위는 소리 높여 세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려놓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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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심했다.


퇴직하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성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하자고.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자고. 나의 경험을 강요하지 말고, 나의 실수를 숨기지 말고, 나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내가 닦아 놓은 길 위로 후배들이 걸어올 것이다.


그 길이 거칠고 울퉁불퉁하다면 그들은 힘들 것이고, 그 길이 넓고 단단하다면 그들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의 손을 부러워하던 아이였다.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손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그 손을 놓아주고, 같은 높이에서 나란히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아버지로서의 권위, 사회에서의 위치, 그리고 내 안에 숨어 있던 '자격지심'을 돌아보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조금 더 낮아졌고, 그만큼 조금 더 넓어졌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돌고도는 '순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결핍은 나를 가족여행으로 이끌었고, 가족여행은 나를 겸손으로 이끌었으며, 겸손은 다시 나를 더 나은 선배로 이끌고 있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권위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라,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자고...

'앞서 걷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이 되자고.


그리고 언젠가 후배들이, 자녀들이 이렇게 말해주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 선배 덕분에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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