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는 오래되었고, 확신은 2023년 3월 2일 오후 2시경부터였다.
‘사랑인가? 어쩌면?‘
여행 전 설렘은 여전했고, 고대하던 삶이 실제가 된다는 상상으로 하여금 달달한 떨림이 생기기도 했다. 이토록 생기로운 얼굴을 띈 게 얼마만인가! 툭 치면 떨어지는 겨울에 살고 있는 올리브 나무처럼 살았기에 다시 봄이 온다는 기대는 죽어가는 나를 지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루한 말로, 여행은 분출하지 못하는 화산의 속내를 하고 있어 들끓음을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각하지 못한 불안이 도사리는 무의식의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무질서의 계도로 이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로 발을 띄는 순간 그 순간에 국한되어 자신을 살피지 말고, 요동의 근원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억제된 무언가를 뚫고 두 발로 땅을 내딛고 싶어서 포르투갈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여행 준비는 늘 그렇듯 별다른 계획 없이 진행했고, 이번 여행의 진심을 끌어내어 여행 아닌 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5년간 대기업의 노비로 살았다. 노비는 시키는 일을 행하고 합당한 가치를 받는다. 여기서 합당한 가치란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황금이다. 비운의 80년대생인 나는 열심히 공부하지도 계획하지도 않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노비였던 이유는 백만가지다. 노비의 생계 목적은 샤넬백 같은 명품을 사는 것이다. 노비로서 루이뷔통, 구찌, 샤넬 브랜드의 가방은 수두룩하다.
우리집은 구축 아파트로 입주 당시 반셀프 인테리어를 마쳤다. 나는 현장 소장을 도맡아 열심히 일했다. 값비싼 인테리어를 한다는데 지휘관이 노비라니 말이 되는가. 말도 안 되는 인테리어를 하면서 난생처음 도면을 그리고 노가다판에 훈수를 두기도 했다. 물론 이성적인 남편 때문에 울기도 했지만. 결혼이란 제도를 두고두고 생각하는 나는 안방 가구 배치를 구상하면서 우선적으로 명품백 진열 장소부터 지정했다. 머리맡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우습지 않은가. 집에 도둑이라도 들면 부동산 계약서보다 명품백을 지킨다는 게! (아참! 여기서 말하는 우리집은 자가다. 은행 대출을 절반 이상을 낀.)
착한 막내로 살았던 약 20년 살이를 지나, 사회에서 소속되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공부, 졸업, 취업’을 해야 하는 이유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취업을 부추기고 취업하지 못한 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긴다. 물론 나는 금수저도 은수저도 동수저도 아니다. 흙수저 그 이하일 것이다. 올바른 삶을 가르쳤던 부모님 또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다그쳤지만, 하나밖에 없는 형제는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으셨다. 다행히도? 나는 공무원이 될 재목은 아니었던 것인지 망나니 같은 삶을 지지받은 건 웃픈 사실이다.
포르투갈 한 달 살기 전 나의 인생 목적은 “노는 것”이었다. 진부한 미국의 철학자들은 “플레이”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놀기는 싫었다. 온갖 SNS에 친구들이랑 명품치레한 사진을 올리고 싶었기에 소꿉장난하던 친구들은 가상의 인물처럼 온라인으로만 간단한 안부를 물을 뿐. 잔여 인간관계는 ‘지위, 연봉, 겉치레’를 따지는 인물들로 가지를 이루었다.
한국의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화하는 나무와 숲을 볼 수 있어서다. 썩은 나뭇가지는 도려내면 그만인데 뿌리까지 옮으면 그 생명은 끝이 난다. 개화는 꿈도 못꾸고 말이다.
나의 포르투갈 한 달 살기는 백수가 샤넬백을 사려고 했던 사건이다. 명품족 인생에 있어 중대한 사안으로 사건이라고 치부하겠다. 명품에 죽고 못살던 내가 샤넬백을 살 돈으로 포르투갈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이다. 매년 생일선물로 명품을 싸질렀던 여행 애호가는 부자를 빙자한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