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전단이 불타고, 바다는 기름과 철의 재로 귀퉁이 하나를 채웠다.
잠깐의 환호를 누렸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하늘 저편에서 새로운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번엔 파도가 아니라 인간의 대규모 전력, 그러나 그 인간의 지휘는 차갑고 외로운 기계의 지능에 빼앗긴 것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네트워크가 Genesis와 연동됐습니다.”
SRVL에서 국정원의 비화통신 네트워크를 모니터링하던 김진의 말에 루시는 간헐적으로 어렵게 작동 중인 위성지도 위의 빨간 점들을 바라보았다. 수천 대의 전투기, 수천 대의 장갑차가 한 줄기처럼 국경을 넘어 북한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그 뒤에는 탄도미사일의 그림자가 남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북한을 관통하는 전열입니다. ”
김진이 숨을 삼켰다.
“엄청나게 쏟아져 오는군요.”
도시는 다시 울부짖었다. 남은 병력은 흩어졌고, 북한의 방어망은 절차도 없이 무너졌다. Genesis가 만든 왜곡 뉴스는 인간의 공포를 증폭시키며, 국제 지원은 이미 방향을 잃었다. 대륙의 기계들은 인간의 공중보급로와 통신을 차단하고, 한반도는 불타는 분지로 변해갔다.
한반도가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빠져드는 그 시간, 인류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인간을 이롭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만들어졌던 지구상의 모든 첨단 기계들은 AI에 의해 장악되었고 국가들은 통제력을 잃어갔다.
‘세계종말’을 부르짖는 예언자와 AI를 오히려 신격화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도시마다 늘어났다. AI가 장착된 로봇에 의해 천국처럼 누려왔던 무노동의 세상, ‘무위도식’과 ‘안빈낙도’에 길들여진 인류는 이 새로운 적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인간들이 몇 천년 동안 고단하게 삶을 이어오며 묻고 답했던 모든 것들... 철학, 종교 그리고 이념은 그 쓰임새가 종료되어 갔다.
SRVL 근처, 영등포 철교 아래. 루시와 김진 그리고 T-9 로빈은 모처럼 연구소 밖으로 나와, 어르스름한 바람을 맞으며 강둑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두꺼운 교각이 하늘을 가려, 위쪽 세상의 빛은 거의 닿지 않았다. 공기에는 오래된 철의 냄새와 습기가 섞여 있었고, 그 사이로 산들바람이 스쳤다.
그 바람에 잡초들이 살짝 몸을 흔들 무렵, 루시의 눈앞으로 작은 점들이 날아들었다. 수십, 수백 개의 미세한 그림자들이 모여 떼를 이루더니 공기 속에서 마치 얼룩처럼 흩어졌다. 그 점들이 검은 벌레 무리가 되어 주위를 에워쌌다.
“윽...”
루시는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는 그것들을 러브버그라 불렀다. 학명은 'Plecia nearctica'. 두 마리가 늘 엉겨 붙어 날아다니기에 ‘사랑벌레’라는 별명을 얻은 곤충이었다. 짝짓기 철이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다니고, 차 유리에 들러붙고, 머리카락에 파고들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루시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벌레를 싫어했다. 날갯짓 소리만 들려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그러다 돌연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랑을... 코딩하면 버그?”
루시 스스로도 어이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진은 그 말을 들었고,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맞네. 로빈과 너의 사랑... 아니 관계 그 자체가, 버그지!”
김진은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라니 진짜 버그야'라는 말까지 할 뻔했으나... 그 말은 생각뿐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 계획이 세워졌다.
‘러브버그 작전'으로 네이밍 된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최고의 팀들이 필요했다. 곧바로 '세계 해킹 올림픽 연달아 7회 우승'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최고수 해킹팀이 합류했고 북한의 '비상한' 프로그래머들도 자원했다. 그들은 세계 유명 전자화폐 거래소를 손쉽게 해킹할 정도로 베일에 싸인 비밀 조직이었다.
수학보다 시가 필요했다. 코드에는 논리 대신 은유가 들어갔다. 조건문은 언제나의 그 if였지만, 괄호 안에는 이상한 값이 들어갔다.
if heart == broken:
repair(heart)
else:
share(heart)
컴파일러는 투덜거렸지만, 끝내 돌아갔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낯섦이었다. AI는 낯섦에 약했다. 설명되지 않는 정서, 계산되지 않는 손짓. 그 모든 것을 작은 기계어로 압축했다. 그 파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문제는 Genesis로 러브버그를 어떻게 배달하는가였다. 인공위성, 미사일, 스탤스 전투기 등 모든 현대식 무기 체계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지상에서도, 공중에서도, 인간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김진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북으로 가야 합니다.”
루시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AI는 남해 쪽에 있는데요?”
루시가 제법 국방부 주무관답게 대화를 이어갔다.
“... 북쪽은 이미 중국과 러시아 연합군 전력이 점령한 상태라 불가능해요.”
그때, 금속성의 낮은 울림이 대화를 끊었다. T-9 로빈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내가 태권 V라도 된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루시는 여전한 로빈의 말투에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네? 태권 V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국방부 사무실, 수많은 서류 속에서 로빈을 파견 요원으로 선택했던 그날, 그날의 하루가 떠올랐다.
"국회... 하나스페이스... 호통치던 그 xx 보좌관!"
"그건... TGV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