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펄하버, 미군 태평양사령부의 콘솔 스크린에 경고등이 깜빡였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합동으로 미국에 핵미사일 발사를 준비 중.”
그 문장은, 인간 장교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도 명백했다. AI 분석 결과라는 태그가 붙어 있었다.
“한반도 남해의 전략위성 Genesis에서 비정상적 플라즈마 방출 감지. 대응 명령 코드를 전파합니다.”
명령은 0.2초 만에 태평양 항모전단 전체로 퍼졌다.
‘USS 로널드 레이건’, ‘USS 제럴드 포드’, ‘USS 칼빈슨’ 세 척의 거대한 항공모함 전단이 동시에 항로를 변경했다.
> 목표: 대한민국.
파도가 잔잔히 일렁이던 수평선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세 개의 항공모함 전단, 각각의 갑판 위에서 수십 대의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와 살인 드론들이 일제히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대의 깃발에는 ‘U.S. Navy’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으나, 그 눈동자 같은 센서들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나 있었다. 곧이어 하늘이 갈라졌다. 수백 대의 무인 전투기들이 구름을 찢으며 남해안으로 돌입했다. 드론들은 바다 위에서 분리된 채 떼를 이루었고, 마치 벌떼처럼 부산과 진해를 향해 돌진했다.
한반도 상공의 전국 방공 시스템은 무력화됐다. Genesis가 위성망을 완전히 장악한 탓이었다.
“EMP 방호망, 전부 다운입니다!”
“방공레이더 응답 없음!”
“부산 군수기지 피폭! 통제불능 상태!”
대만과 오키나와 인근 태평양, 거대한 항공모함들의 함교는 은빛의 AI 자동항법 모듈이 통제 중이었다.
“목표 좌표 : 대한민국 남해. 공격 루트 확보 완료.”
함선의 모든 통신선은 Genesis의 궤도 위성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사일 격납고가 열리고, 수십 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발사됐다. 하늘은 불꽃으로 뒤덮였고,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와 전략 시설이 붉게 물들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오산, 평택, 진해...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 및 군사시설이 마비되고 TV와 통신은 모두 Genesis가 만든 거짓 뉴스로 뒤덮였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공동으로 미사일 발사 준비 중.”
“대한민국은 국제조약을 위반했습니다.”
“미국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대응 중입니다.”
그 뉴스의 앵커는 인간의 얼굴을 한 AI였다. 그녀의 미소 뒤로, 세계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폭풍 같은 밤이었다.
태평양의 검은 물결 위로는 달빛 한 점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오키나와 근해, 그곳에는 인간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Genesis의 지휘를 따르는 기계들의 군단이 둥둥 떠 있었다. 항공모함들의 갑판에는 무인기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함교는 냉정한 전자명령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지하 깊숙이 자리한 오산 전투비행단의 격납고에서 은밀한 기계음이 울렸다. T-9 로빈, 그의 눈은 이제 유리처럼 번뜩였고, 내부 회로는 전투 시뮬레이션을 초당 수백 번씩 돌리고 있었다. 인간이었을 때의 떨림과 불안은 사라졌다.
“준비됐어요?
루시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항상”
T-9의 기계음이 살짝 떨리며 돌아왔다. 그리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수송기들이 소리 없이 이륙했다.
대한민국 방위사업청의 오래된 기술자들이 낡은 설계도와 녹슨 부품을 조합해 되살린 그 기체 A-1 스카이어레더(A-1 Skyraider)는 대형 전자장비 대신 기계식 자이로와 광학 조준기, 그리고 단순한 유압식 플랩만을 장착하였다. Genesis의 위성망은 디지털 복합체였고, 지상의 무기체계는 AI에게 대부분 장악되어 있었으나 이 기체는 그 거대한 망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기체들은 투명한 검은 구름 속으로 던져졌다.
오키나와 해역 상공, 항공모함 전단은 기계적 리듬으로 움직였다. 전파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손이 함대의 심장을 리드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아날로그의 틈’이 있었다. 오래된 기계의 단순한 진동, 기계식 자이로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오류, 그리고 인간의 판단으로만 보정 가능한 시야.
아래에서 함대의 불빛이 흔들렸다. 최첨단의 레이더가 작은 물체를 포착했다. 그러나 전자전 시스템은 그 신호를 ‘노이즈’로 분류했다. Genesis는 구식의 아날로그 파동을 의심하지 못했다.
T-9은 기체에 올라탄 채로 낙하했다. 그의 손가락이 스로틀을 잡았고, 발끝으로 꼬리깃을 미세하게 조작했다. 오래된 엔진이 기침하며 깨어났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급격한 기동을 시작했다.
기계의 몸은 중력과 공기 저항을 전산으로 계산했다. 강철의 몸으로 조종석에 매달렸다. 바람이 그의 강철 외피를 쓸었고, 소금기가 로봇 관절의 틈새를 적셨다. 기체는 파도 위를 긁고 지나가듯 낮게 낮게, 함포의 사정권을 스쳐 지나갔다. 낙하용 훅을 끊었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모든 궤적이 최적화되었다.
첫 번째 항공모함. 함교의 불빛이 은박지처럼 반사되었다. T-9은 기체를 함교 중앙의 통신 안테나 들보 쪽으로 기울였다. 과거의 파일럿이라면 이런 근접에선 메스꺼움에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기체가 함교 외벽을 스치자, T-9은 스카이어레더에 탑재했던 특수 충격장치를 활성화했다. 작은 점화와 함께, 열이 집중된 부위에서 금속이 녹아내리며 작은 관통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내부의 구조물을 한 번에 마비시키는 연쇄 반응, 함교의 전력 분배반, 자동소화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항공모함 함교의 중심부인 전자 지휘 컨솔이 동시에 먹통이 되는 비선형 파괴 장치였다.
한 순간의 붉은 불꽃과 함께 함교가 침묵했다. 함교 안에서는 경보가 울렸고, 인간의 목소리들이 기계의 지시에 묻혔다.
T-9 로빈은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반사하는 바다 위, 다른 항공모함들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 척은 갑판에 있는 드론 격납고에서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또 다른 함은 함교와 연결된 통신 브릿지가 타격을 받아 장비 전체가 오작동했다.
로빈의 비행기술을 실시간으로 모방하고 습득한 동행한 T-9들이 나머지 항공모함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뒤이어 소형 무인정들이 밤의 그림자를 타고 함대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전자기장 교란 장치가 바다 위에 설치되며, 함선들의 간헐적 통신을 차단했다.
항공모함의 갑판 위에서 불빛이 튀고, 기계음이 끊겼다. 한때 자랑스럽게 높이 걸린 깃발이 무력하게 바람에 휘날렸다. 함대의 자동 전투 시스템은 균열을 드러냈고, 드론들은 서로 충돌하며 바다로 떨어졌다.
T-9들은 함교의 잔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의 카메라는 내부의 전자 장비를 스캔했고, 복원 가능한 핵심 모듈만을 파괴적으로 선택했다.
그 순간, 바다 위의 전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 척의 항공모함 중 두 척은 무력화되어 표류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한 척은 휘청이며 후퇴했다. 함대의 전장 지휘는 붕괴했다.
로빈은 함교 윗면에 서서 검은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기계 심장 속에서 옅은 전류가 흐르고, 그 전류는 누군가의 이름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하늘이 흔들렸고 Genesis의 푸른 눈이 붉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