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도 북녘에 이어 벌써 검은 연기로 그을려져 있었다. 도시의 골격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잡음이 흐르는 위성 모니터를 보며 낮게 목소리를 나눴다. 루시가 손가락으로 한 구석을 짚었다.
“여기요. 국회의사당 지하 벙커에 그게 보관되어 있어요. 이건 AI로 움직이지 않고 인간이 조종해야 해요. 그런데 ‘폐기’ 예정이라고는 했는데...”
김진은 화면의 위성 이미지를 확대했다. 화면 속은 여전히 Genesis가 어지럽게 흔들어 놓은 데이터로 노이즈가 가득했지만, 오래된 방공망 표식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방호 등급은 높지만, 틈이 있습니다.”
로빈(T-9)의 음성에는 인간의 목소리와는 다른, 기계의 침착함이 깔려 있었다.
로빈과 김진은 국정원 휴민트를 통해 쫓기다시피 남하한 북한의 지도층과 접촉하고 대포동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기술자 3명을 확보했다.
영등포의 SRVL 연구소에서 국회의사당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서울의 주요 시설도 AI에게 장악된 상태로, 그들은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오래된 철물소와 폐창고가 늘어선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길은 좁고 어두웠다. 녹슨 간판과 깨진 유리창 사이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깜박였고, 철문 뒤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구거리였지만 지금은 바람과 먼지만이 남아 있었다. 루시는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그대로 있을지...”
머리 위 철교의 그림자 아래, 그들은 거의 무음으로 움직였다. AI의 감시 드론은 머리 위 구름층 너머를 맴돌고 있었지만, 이 낡은 골목만큼은 아직 디지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누구의 시선에도 포착되지 않은 채, 여의도 한복판, 국회의사당의 그림자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내가 내려가겠습니다.”
“내가 가진 인터페이스로 이곳의 전자 감시를 일시적으로 속여 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의사당 주변은 이미 전면 통제구역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오래된 하수도 연결망과, 국회 뒤편에 방치된 정비용 출입구.
로빈은 안구의 초음파 정찰기능을 활성화시켜 주위를 스캔했다. 지하 입구는 막혀 있었고, 그 앞에는 자동유도 감시드론 몇 대와 중국의 휴머노이드형 전투로봇이 도열해 있었다.
“자동 경계선, 레이더, 적외선, 음파 센서 동작 상태 양호.”
김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시가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로빈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인공 신경망은 GEO-주파수의 잡음을 의식의 바닥까지 읽어 들였다. 작은 전자적 파동을 만들어 주변 인프라에 ‘허위 신호’를 전송했다. AI의 시야에서 그들은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됐다.
지하 깊숙한 곳에 도달하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등을 스쳤다. 오래된 경보등이 간헐적으로 깜박였고, 바닥에는 기름과 먼지가 섞인 얼룩이 흘러 있었다. 입구를 막던 쇠문은 무겁게 보였지만 T-9이 해결하였다. 문이 삐걱이며 열릴 때, 로빈의 센서가 미약한 전자파의 잔향을 잡아냈다.
“감시 드론이 도약 준비 중. 30초 간격.”
그들은 좁은 복도를 지나 격납고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섰다. 격납고의 문은 두꺼웠고, 그 앞에는 자동 방어 유도장치가 아직도 녹슬지 않은 채로 서 있었다.
로빈은 복도의 CCTV 루프를 짧게 끊어내고 있었다. 그의 디지털 손가락은 공중을 스치듯 움직였다. 방어 시스템의 동작이 1.8초 지연됐다. 그 지연을 이용해, 루시와 김진은 수동 해머와 절단기로 방어 유도장치의 라인을 끊었다. 그들은 격납고 문을 열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격납고 안은 숨 막힐 정도로 거대했다. 그 중앙에 누워 있는 거대한 덩어리, TGV였다.
시간이 흘러 로봇의 표면은 윤기를 잃었지만, 그 위용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내가 말했던 그 기계예요.”
그녀는 한걸음 다가갔다. 손이 닿자, 오래된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김진은 패널을 열고 빠르게 회로를 점검하고 분석했다. 먼지에 뒤덮인 전기 접점들을 닦아내며 그는 속삭였다.
“이 녀석,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어. 단지 잠자고 있었을 뿐이야.”
뒤이어 TGV의 전자 포트를 스캔했다. 하나스페이스가 만든 간결한 인터페이스는 즉시 김진의 패드에서 호환 가능한 시그널을 보냈다.
“수동 부팅 루틴을 활성화합니다.”
루시가 중얼거렸다.
“어 박사님이 사과가 아니고 갤마크 패드를?”
“사과들은 튠으로 너무 과하게 연결되어 이미 AI가 장악했습니다”
천천히, 의식이 깨어나는 것처럼, TGV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전조등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부의 기어들이 끼익 거리며 움직였고, 오래된 엔진이 낮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전장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잠금장치 거의 해제.”
김진이 말했다.
“나가야 합니다. 지금”
그러나 그 순간, 지하의 공기가 진동했다. AI의 감시체계가 그들을 포착했다. 복도 저편에서 경보가 울렸고, 금속의 문들이 자동으로 닫히기 시작했다. 탈출로가 차단됐다. 로빈은 즉시 행동했다. 그의 팔이 TGV의 고정 결속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김진은 마지막 보안 패널에 손을 넣고 말없이 코드를 입력했다. 땀이 눈가를 적셨다.
루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녀는 외부 패널을 발로 차고 북한 기술자들을 안으로 밀면서 TGV의 컨트롤 타워 룸으로 뛰어들었다.
“빨리!”
루시가 외쳤다. 하지만 김진의 부근에서 작은 폭발이 터졌다. 파편이 튀었고, 김진의 어깨에 강한 충격이 스쳤다. 그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지만, 로빈이 그의 팔을 잡아끌어 TGV CT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나가요. 나는 고정 결속체를 마저 해체하고 드론들을 막아야 합니다.”
T-9 로빈의 인공 음성이 울렸다. 김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손등을 타고 흘렀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갑시다”
루시가 TGV의 CT룸에서 수많은 계기판을 보고 있는 사이에 김진이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오른쪽 스로틀 레버를 잡아당겨요!”
“그리고 루시 당신이 탈출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몸으로 실행하고... 으”
“이 로봇은 마스터-슬레이브 제어 방식과 일부는 하이브리드 자율 제어 모델인데...”
“당신의 동작이 로봇에 복제됩니다”
로봇이 서서히 움직임이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둥근 돔이 연동되면서 활짝 열렸다. 드디어 지하 벙커에서 조용히 녹슬어 가던 TGV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랜만의 출동으로 눈이 부신 거대 로봇은, 이지스 기능이 내장된 안구를 로봇팔로 잠시 감싸 안았다.
‘길이 40미터, 무게 300톤의 인간형 전투 로봇, TGV (Tactical Giant Vehicle)’
조종석의 TC룸에는 마스터 컨트롤 프레임이 있었다. 팔을 움직이면 로봇의 팔이 따라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면 그 시야가 그대로 투사되는 완전 동기화 구조. 하나스페이스의 모든 기술이 응축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