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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Mar 02. 2021

세탁소 아저씨의 문자

코로나 시대의 풍경


4년 전, 이사하고 새로 세탁소를 찾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세탁소에 백발이 성성한 주인이 옷을 다리고 있었다.증기가 꽉 찬 상태로 공중에 매달려있는 다리미를 내려 구겨진 옷을 펴고 있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손놀림이었다. 솜씨가 좋았다. 당연히 단골이 되었다. 무엇보다 배달을 해주셨다. 세탁할 옷을 4~5벌쯤 모아지면 편하게 문자를 하라고 했다. 세탁물을 가져가고 나면 전체 내역과 총액을 다시 문자로 보내주셨다.


인상적이었던 건 호칭이었다. "세탁소 아저씨예요. 자켓 4벌. 바지 2벌. 코트 2벌..." 아저씨는 자기 자신을 아저씨라고 지칭했고, 손님을 그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아줌마. 사모님. 사장님 이 중 어떤 호칭하고도 친하지 않아서 늘 잔잔한 기분상함을 경험하는 와중에 아저씨의 호칭 지침은 신선했다. 내가 부를 이름도 정해주다니 마음도 편해 최적의 거리는 계속 잘 유지되었다.


딱 한번, 간만에 세탁소로 직접 가서 수선이 가능한지 여부를 상담할 때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혹시 뉴스에 나오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때가 안희정 사건 1심 공판 직후였을거다. 그때 재판정에서 1심 무죄 판결을 내리는 걸 듣고 나왔다가 안희정 지지자들이 연호를 하는 걸 듣고 크게 열받아서 분노의 포효를 하는걸 모 케이블 방송에서 담았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들어보니 그 짧은 영상이 하루 종일 나왔었다고 했다. 그걸 보신 모양이었다. 뭐라고 길게 설명하기도 그래서 그냥 아니라고 했다. 아저씨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여러모로 참 드물게 거리두기를 잘하시는 분이셨다.


지난 늦가을, 택시를 잡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마침 택시가 앞에 섰다. 손님들이 내렸다. 술에 취한 노년 남성 셋이 내렸고 뒤이어 한 대의 택시가 또 섰다. 거기에도 일행이 셋 더 있었다. 대낮부터 술을 많이 드셨네 싶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세탁소 아저씨였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아저씨는 낯설었다. 목례를 했더니 같이 목례를 하셨다. 주변에 있는 아저씨의 친구들은 야 우리가 이 시간에 술도 마시고, 천지가 개벽한 건지 세상이 다 망했는지 둘 중 하나구나 라고 했고, 아저씨는 마스크를 고쳐쓰며 친구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마스크 " 


친구들과 함께 있는 아저씨는 무척 낯설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모습도. 세탁소는 오늘 쉬는 날인가. 궁금증은 며칠 뒤에 풀렷다. 며칠 뒤에 긴 문자가 왔다. 세탁소 아저씨였다.


"지난 20년동안 영업한 세탁소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아파 하던 일을 퇴직했고, 저를 도우면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세탁관련 약품이 독하기도 하고, 코로나로 세탁소를 이용해주시는 고객분의 발길도 뜸해져, 영업을 종료하기로 했습니다. 남아있는 세탁물은 0월 0일까지 찾아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동네길을 산책한다. 지난 1년동안 꽤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배달전문점이 들어섰다.

세탁소는 여기 말고도 이 골목에서만 3개가 사라졌다. 당근마켓에는 세탁배달관련 서비스 광고가 올라왔다.

많은 세계가 무너졌다. 그런데 그 무너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놀라울 정도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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