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이 뭔지를 묻는 분들이 가끔 있다. 나는 대체로 무례한 질문을 받으면 당신 왜 이렇게 무례해?라고 답하는 편이다. 요령이라곤 1도 없다는 얘기...
1. 애는 안낳을거야? 엄마가 물었다.
듣기 싫은 질문을 하는 사람 중 1등은 엄마다. 하지만 이건 '무례'한 문제는 아니지. 그보다 좀 더 깊숙한 이슈.
“애는 안낳을 작정이니?” 실제로 엄마는 나에게 저 질문을 오랫동안 간헐적으로 했는데, 말할 때마다 뉘앙스가 달라졌다. 이십대 중반쯤에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말에 “애도 안낳을거니?”라고 물으시고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박한 방식으로 나에게 아이를 낳는 경험을 해보라고 유혹하셨다.
"막내(내 얘기다)를 낳을 때하나도 안아팠는데"라며 혼잣말처럼 말자락을 펼치시더니, “네가 입구를 꽉 채웠다가 시원하게 쑥 나와서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정말 할 말을 잃었다...살면서 할 말을 잃은 몇 안되는 장면이었다. 그 설명은 명백하게 섹슈얼해서, 덕분에 그 이후에 나는 출산과 오르가즘이 연결되는 각종 기상천외한 꿈을 지금까지도 종종 꾸고 있다.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당신은 그런 뜻이 아니셨다며 말을 돌리셨다. 그래..엄마는 말돌리기의 천재인데다가 독백 방백을 대화 중에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사십대가 되었을 때 엄마는 또 같은 질문을 하셨다.
“애는 안낳을 작정이고?”
그 전과는 영판 뉘앙스가 달랐다.
"왜그래? 평생 애없이 사는거 후회할까봐 걱정되는거야?"
라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속내를 토로했다.
“어디에서 애비없는 애를 낳아와서 같이 키워달라고 할까봐 걱정이었다”고.
"엄마한테 키워달라고 안할게"
"그래 엄마 늙었어"
이렇게 대화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2. 아랫집 분이 물었다. “그 집에 애는 없나요?”
엊그제 아랫집에서 올라왔다. 화장실 천장에서 가끔 물이 똑똑 떨어진다며 우리집에서 새는지 살펴봐달라고 했다. 관리실과 설비업자 등을 불러 바로 점검했다. 아랫집 분은 전문가들이 검사를 하는 동안 바깥에 있던 나에게 물었다.
“중학생 남자애들 둘이 그 집 자식들인가요?”
“아니예요”
“그럼 그 집에 애는 없나요?”
“네 없어요”
“어쩌다가...왜 없어요?”
나의 대답은 이거였다. “없을만한 이유가 있겠죠”
나중에 친구들이 이 대답을 듣고 나를 엄청 놀렸다. 그렇게 대답하면 너무 공격적인 거 아니냐, 상대가 별 생각을 다하지 않았겠냐,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대화였는데 이제 아랫집에선 별 얘기가 다 나올거다.... 등등
그럼 뭐라고 답해야 해?
“그러게요” “그렇게 되었어요” “네네” 이렇게...
아아...
그런데, 나는 이 질문이 정말, 매우, 싫다. “애가 없어요? 어쩌다가”라니. 내가 애를 낳고 싶을지 아닐지, 애를 낳을 수 있는 몸인지 아닌 몸인지, 애를 낳을 수 있어도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등 수많은 상황을 그냥 전제한 질문. 무례도 무심도 아니라, 사실 굉장히 폭력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뭘 그렇게 폭력적인 질문을 다하시나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 내 딴에는 최선의 예의를 갖춘 대답이었다.
“없을만한 이유가 있겠죠”
이건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한 마디도 더 물어보지 말라는 경고였고질문의 무례함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충고이기도 했다.
친구들도 그런거라면 뭐...라며 납득해주었다. (응? 맞지?)
3. 하나 더 말해보았다.
“그런데 그 아랫집 분이 글쎄 “어른은 없어요?”라고 하는거 있지. 그래서 “제가 어른이예요”라고 답했어. 이것도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