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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Nov 09. 2021

14년간의 후퇴에 대한 책임

한겨레 세상읽기 2021/11/9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진 지 14년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법무부에서 제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로만 따지면 14년이고,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1997년부터였으니 24년이다. 정권이 바뀌고 또 바뀌는 사반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못했다. 2007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혐오범죄방지법을 이어서 제정했으면 지금의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창궐해 있는 혐오의 감정정치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차별금지법으로 모든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야 없겠지만 차별금지법조차 만들지 못하는 곳에 해결능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한가지 확실한 건 차별은 더 확산되었고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을 향한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는 선동가는 자기 몫의 이득을 차별하는 대상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서 얻는다. 차별을 방치하면 이 추종자들의 크기가 커진다. <편견>의 저자 고든 올포트의 지적이다. 더 무서운 건 선동가이자 착취자가 자신을 구원자로 포장하는 데 성공하면 사람들은 그를 공직에 선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차별과 혐오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길거리 펼침막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기자회견장에서, 토론회에서도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가. 헌법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돌림노래다. 맞다. 우리에겐 헌법이 있다. 헌법 11조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져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그런데 정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가? 노회찬 의원은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다”고 일갈한 바 있다.

차별은 도처에 있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등권 보장을 위한 입법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89%였고 “나도 차별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이 91%로 나왔다. 가능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차별행위 진정 접수 현황을 보면 2001년 53건에서 2020년 2385건으로 증가했다. 차별행위 사유로는 장애 관련이 총 44%에 달했고, 사회적 신분 9.5%, 성희롱 9.2%, 출신국가 5.2% 순이었다. 하지만 인권위법은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조직의 성격을 규정하고 적용범위를 제한한데다가 조사와 권고 기능만 있어 차별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오죽하면 인권위가 나서서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정부입법을 촉구했을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있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는 누구와의 합의를 말하는 것인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여론은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두 명의 국회의원이 법을 발의해놓고도 반대 세력의 압박에 스스로 법을 철회했던 2013년에도 여론조사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59.8%에 달했다. 지금은 91% 수준이다. 누구와 합의를 해 오라는 말인가. 두 집단이 떠오른다. 하나는 반대세력이다. 면전에 대놓고 차별과 혐오를 하는 이들과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머지 하나는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2020년 <한국방송>(KBS)에서는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견을 익명으로 물었다. 300명 중 94명이 응답했고, 이 중 찬성이 69명, 반대가 25명이었다. 익명인데도 200명이 넘게 답하지 못할 만큼 눈치를 보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할 준비가 가장 안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권인숙, 박주민, 이상민, 장혜영 등 평등법 발의에 나선 4명의 국회의원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했다. 청와대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하자는 메시지가 나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부터 걷고 있는 평등 대행진이 11월10일 마침내 국회 앞에 도착한다. 이제는 정말 국회가 일할 시간이다. 헌법 11조를 수호한다는 것을 증명하라.


 출처: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184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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