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3개월 남았다. 여론조사기관이 지지율 조사 결과를 수시로 발표한다.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묻는 전화가 계속 울려대는 중이다.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지지 여부를 벌써 결정할 수 있나. 거대 양당 후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무엇을 기준으로? 아직 정책 공약도, 인재 영입도, 후보 간 토론도 아무것도 확정된 바가 없는 상황이다. 오늘 이 당에서 발표한 인재는 어제 저 당과 접촉했다고 하고, 후보들 간에 변별력 있는 핵심 공약이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같은 선거대책위원회 안에서도 각기 다른 목소리가 조율되지 않고 튀어나온다. 기준점은 후보 그 자체와 진영논리뿐이다.
연예인 인기투표도 이런 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무런 퍼포먼스도 보여주지 않고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짜고짜 탈락자를 결정하는 투표부터 실시하는 방송을 한다면 당연히 시청자들은 외면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인보다 연예인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며 공인으로서 살 것을 요구하는 나라라고는 해도 새삼 놀랍다. 선거운동은 인기투표이자 일종의 눈치게임이 되어버렸다.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매주 발표되는 지지율이라는 성적표를 앞에 두고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일 리가 없다. 단지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어야 한다. 단임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이 대한민국에서 운용 가능한 유일한 민주주의 통치 형태일 리도 없다. 크리스틴 로스 뉴욕대 교수(비교문학)는 민주주의는 단지 통치 형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헌정 형태나 제도 형태가 아니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공통’의 문제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아무나의 힘’으로서 잠재성을 가진다.
선거는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가 채택한 제도적 절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선거는 무엇보다도 ‘주권자에게 권력을’이라는 전제하에 그 권력의 위임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을 제도화한 장치라는 점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얼굴이 누구인지 새롭게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투표와 민주주의는 아무 관련이 없다. 독재자도 투표로 선출되지 않는가. 그러니 적어도 선거 때만이라도 몫이 없는 자들을 위한 룰을 새롭게 제안하고, 탐욕을 절제하고 공존의 방법을 제안하는 약속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대화는 아예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고, ‘일부’의 지지를 통해서 당선된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투표는 사실상 독재를 권하고 정당화까지 하는 과정이 된다. 여기 어디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지지율 정치는 실제 내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걸 너무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마치 변할 수 없는 조건인 것처럼 치부하면서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거대 야당 후보는 행정부의 역할에 이해가 없는지 초헌법적인 반인권 반노동 공약을 연이어 내고, 집권 여당의 후보는 국민 정서와 사회적 합의라는 텅 빈 기표 뒤에서 자기 말을 스스로 배신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누구 편이냐, 양비론이냐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마치 지금 경기장에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 살자>를 쓴 케이트 본스타인은 이런 편가르기 질문을 ‘일진 놀이’라고 비판한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런 질문은 대개 일진들, 아니면 한때 일진들의 희생양이었다가 나중에 그 무리에 가담한 사람들의 입에서 주로 나온다. 이들은 자기편이 되어 달라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편이 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불이익을 먼저 계산기 꺼내놓고 두드리며 선택을 강요한다.
거대 양당의 후보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당신들은 누구 곁에 있을 건가. 나에게 누구 편이냐고 묻지 말고 당신이 누구 편에 설지 이야기하라. 선거를 국민 왕따 게임으로 만들지 말고, 링 위에 올라간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라. 이 지지율 놀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자. 최대한 결정을 늦추자.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더 나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조리돌림과 조롱, 그리고 공공연한 왕따, 적어도 이것보다는 나은 정치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