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상읽기, 2022.1.3
[세상읽기] 권김현영ㅣ여성학 연구자
역사학자 이임하가 1927년에 창립한 여성단체인 근우회에 대한 연구서를 썼다. 책 제목은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근우회의 창립취지문 초안에서 인용한 말이다. 근우회는 친목 모임을 한 지 열흘 만에 단체를 발족하자는 총회를 열고, 그로부터 한달 만에 창립했다. 근우회의 전국 순회 강연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근우회의 활동에 세간이 주목하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여성의 ‘일상’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사기결혼을 당하거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유산한 일 등에 근우회 지회에서는 조사원을 파견해 사정을 살폈고, 학교와 일터에서 분규가 일어나면 학생과 노동자 편에서 자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근우회가 조직을 선전하고 재정을 충당하는 방법도 아주 기발했다. 근우회 중앙집행위원회는 매달 15일을 선전일로 정했는데, 선전일에 참여할 회원들은 헝겊 단추를 1인당 10개 이상 만들어 가져오기로 했고, 이 헝겊 단추 5개와 선전 전단을 함께 넣어 거리에서 판매했다. 가두선전 활동은 당시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었고, 재정활동에 회원들 모두가 참여하도록 하여 근우회 조직이 일부 명망가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하지만 근우회 활동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창립 4년 만에 해소되고 만다.
근우회를 탄압한 건 일제만이 아니었다. 근우회 창립 직후 각 신문의 논설란은 근우회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한 남자 지식인들의 조언으로 넘쳐났다. 계급의식을 가지라거나, 여성문제에만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었는데, 외려 근우회는 세계평화와 민족의 독립부터 가정 내 평등과 성적 괴롭힘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에 임했다. 하지만 이후 역사적 평가와 관련 연구에서도 근우회의 활동은 진영론에 따라 축소되고 왜곡됐다.근우회의 주요 인사로 김활란 등이 알려졌지만 사실 근우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중심인물은 정종명, 정칠성, 우봉운이다. 이 중 정칠성은 종로사거리 남권번 소속 기생이었다가 3·1운동에 참여한 뒤 각성해 페미니즘과 사회이론을 독학했고 분단 이후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숙청당한 인물이다. 기생이자 사회주의자, 독학자였던 정칠성이 근우회의 중심인물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근우회가 유산계급 고학력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근우회의 활동은 당대 남성 지식인들의 가십거리로 치부되곤 했는데, 잡지 <별건곤>에서는 여성운동가들을 조롱하고 인물을 품평하는 글을 자주 실어 근우회 회원들의 공분을 샀다. 정종명은 <별건곤>을 두고 ‘방귀로 반찬을 만드는 법’을 싣는 잡지라고 했는데, 곱씹을수록 기막힌 표현이다.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이자 남성 혐오로 변질되었다며 개탄하는 이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페미니즘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당연히 여성 우월주의나 남성 혐오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멸시로 드러나는 성차별주의를 종식하기 위한 사상이자 실천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기원인 근우회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근우회 기관지에는 각지에서 보낸 여성들의 고민상담이 줄을 이었다. 창간호에 실린 마흔살 여학생 사연은 이렇다. “밤늦게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면 어린 남자 소학생까지도 자신을 여학생이라며 괴롭히는데 자신도 괴롭지만 더 어린 여학생들은 더 심한 고충을 겪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런 버릇을 고칠까요.” 길거리 괴롭힘은 유구하게 내려온 모양이다. 근우회의 편집 담당자는 이렇게 답한다. “두말 말고 따귀부터 갈겨놓고 버릇을 가르치라.” 기개가 대단하다.대구와 북간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경성여자청년동맹부터 신간회 결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친 우봉운은 근우회가 해산한 이듬해인 1932년 1월2일에 조선 여성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멸시가 사라져야 하고 여성이 사회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며 이렇게 글을 맺고 있다. “어린 자식은 경제권을 가진 남성에게 맡겨라. 그리고 공장으로 사회로!” 지금 봐도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구십년 전의 여성들은 미래를 살았다. 지금 우리는 언제를 살고 있는가. 2022년에는 우리 모두 미래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