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파랑', '기쁨', '초록', '희망'이라는 말들 중에 어느 것이 서로 가까운지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어렵겠지만, 직접 그 느낌들을 느끼게 해준다면 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내용들은 각각 그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고유함으로부터 그와 가까운 내용으로 확장해 나가게 한다. 어떤 초록 색감을처음 보더라도 그 색감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다른 색감이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초록 색감과 연두 색감을 동시에 본다면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색감들을 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초록 색감을 '초록'이라는 말이나 '110' 같은 숫자로 구분해서 전했을 때는 이런 즉각적인 번짐 효과가 항상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런 인위적인 언어가 작동하려면 미리 초록 색감과 '초록', '110'이 서로를 연상시키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초록 색감은 풀잎 색, 연두색, 갈매빛(짙은 초록) 등과 가깝고, '초록'이라는 글자는 쵸록, 초륵, 츠록 같은 모양과 가깝고, '110'은 111, 101, 011 같은 모양과 가깝다. 그리고 '초록'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모양과 불려지는 소리는 무한에 가깝게 다양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에서 간접적이고 인위적인 연결은 다양한 내용을 편리하게 다룰 수 있게 하지만, 내용의 직접적인 전달과 번져나가는 성질이 없이는 어떠한 언어소통도 불가능하다.
자연에는 미리 연습하지 않은 내용들의 연상이 일어난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것은 창의적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하나의 내용을 경험하면서 무한에 가까운 비슷한 내용을 알게 된다.
한 번 어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무한에 가깝게 약간씩 다른 자전거들을 타고 무한에 가깝게 다양한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위험한 물건을 한 번 봐도 비슷한 다른 물건을 봤을 때 그 위험성을 떠올릴 수 있다. 그들 사이의 빈 틈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인위적인 언어도 다시 자연스럽게 번져서 '위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한해진다.
아이가 숫자 1을 배우면 그에게 수는 무의식적으로라도 1+1와 1+1+1로 확장해 나간다. 어떤 원을 본다면 다양한 크기의 원들과 찌그러진 원들까지 곁으로 한층 다가오게 된다.
단순한 생명체에 동물들처럼 뚜렷한 감각, 지능, 감정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일들에서 생긴 단편적인 이야기가 모이고빈 틈을 채워가면서, 좀더 길고 넓고 강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일들에서 실현되고 있는 내용들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왔다. 내용들의 관계적인 성질과 번짐 효과에 의해서 아직 현실적으로 나타난 내용이 아닌 어떤 내용들도 현실과의 희미한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단어는 어떻게 어떻게 머릿속에 떠오를까?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다. 사실은 이보다 훨신 더 복잡하다. 우리는 매 순간 얽히고설킨 수많은 상황을 동시에 접한다... 요컨대 우리는 하나의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치는 다수의 부실하게 정의된 상황에 직면한다. 그중 어느 것도 공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분명한 틀로 구분되지 않는다. 주변의 것들에 포위된 우리의 불쌍한 두뇌는 이 예측할 수 없는 혼돈과 끊임없이 씨름하면서 언제나 자신을 둘러싸고 마구잡이로 밀려드는 것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면 '이해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은 일단 휴면 상태에서 깨어나면 이 혼돈에서 일정한 질서를 찾도록 도와주는 친숙한 특정 범주가 저절로 촉발되거나 무의식적으로 환기된다는 것을 뜻한다. 크게 보면 이 말은 온갖 단어가 머릿속에서 즉각 떠오르는 것을 뜻한다...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효율적으로 끊임없이 머릿속에 밀려드는 단어의 세례보다 더 친숙한 경험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