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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Apr 29. 2024

마흔일곱번째 길. 의미와 가치

세상에 수없이 많은 장미가 있더라도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네가 길들인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송이뿐이니까.*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가치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우리의 구상을 통해서는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삶을 일종의 예술로 보았을 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똑부러진 대답을 할 수 없음을 예감할 수 있다. 예술에서 어떤 단순한 요소의 추가가 불러오는 효과는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삶에 예술적인 측면이 더해질수록, 삶의 순간들에 대한 의미와 가치는 그만큼 더 바뀌기 쉽다. 그나마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이야기를 다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예술 작업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만 살지는 않는다.


살면서 종종 생각해보게 되는 삶의 의미와 가치의 문제는 각각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생략된 채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용들의 세세한 뒤엉큄 속에서 숨은 의미와 가치가 발생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 그래서 뛰어난 예술가에게도 버려지는 습작들이 있고, 평범함에 의미와 가치를 씌워버리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다. 현 시대의 예술과 사상은 전통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의문이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되면서 의미과 가치의 발생과 변화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우선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 삶에서 예술적인 측면 자체가 원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고 점점 더 강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주어진 내용들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예술적인 능력은 오랜 전통을 통해서 획득되고 강화된 능력이다. 그런 전통에는 미술 역사상의 경향 같이 시대에 따라 가볍게 평가절하될 수 있는 전통들도 있지만, 몸의 시각 종합 능력 같은 거부하기 힘든 전통들도 있다. 생물학적인 전통 말고도 자본주의 구조 같은 사회적인 전통도 모든 예술 분야에 거부하기 힘든 전통으로 작용한다.


주어진 조건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지만 그대로 수용하지만은 않는 생명 활동의 진행 과정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른 모든 일의 진행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일어나는 일에서 주어지는 내용들과 새롭게 발생하거나 끌어들이는 내용들이 어떤 관계에서 연결되는 것인지가, 우리가 의미와 가치와 관련해서 먼저 살펴봐야 할 문제들이다.  

이를 통해서 전통이 어떻게 수용되고 바뀌어 가는지, 그리고 그런 일들 속에서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대략적이고 일반적인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물리적인 일들에서도 전통의 변화와 가치의 도약이 정말 일어나는 것일까? 모든 일의 진행 형식이 같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해 먼저 답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길을 걷자 장미가 오천 송이나 피어 있는 정원이 나왔습니다.

"내 장미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단 하나뿐이라고 했는데!"

어린 왕자는 풀밭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나를 길들여 줘."

여우가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년이 되어 줘."

"너에게 수천 마리의 여우들 중 단 한 마리의 여우가 되게 해 줘."


"세상에 장미는 한 송이어야만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장미가 있더라도,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 네가 길들인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송이뿐이니까."

여우가 말했습니다.*



*생텍쥐페리, 박소연 옮김, <어린왕자> 중에서, 달리 출판사, 2021.

** 대문사진 - 위키백과(한국) '마르셀 뒤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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