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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Dec 31. 2020

하늘에 있는 쌍댕이 친구에게

20대로 보내는 마지막 날, 너를 추억하며



내 쌍댕이 친구야 안녕?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걸로 내 20대의 마지막 날을 가득 채워보려 해. 이 글을 쓰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린 거 너는 알까? 홀로 널 그리워하며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했던 말들을 이제는 울지 않고 잘 적어볼게.


이 글이 너한테 꼭 닿길 바라며.



 우리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너는 낯을 많이 가리고 무뚝뚝한 나와 비슷한 성격이었어. 하지만 고맙게도 넌 나한테만은 애교가 가득했지. 항상 먼저 다가와서 팔짱도 껴주고, 사랑한다며 볼에 뽀뽀도 해주더라. 그렇게 적극적인 친구는 처음이어서 난 매번 당황했고, 그런 날 보며 넌 귀엽다며 더 꽈악 안고는 했어.


야자시간에 떠들어서 '앉았다 일어났다' 벌을 받던 날, 그다음 날이 우리 단체로 연극 보러 가는 날이었잖아.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가 안 가겠다고 하니까, 서울 살던 네가 우리 집 근처까지 아침 일찍 데리러 왔어. 그뿐이야? 지하철 계단마다 네가 날 안아서 한 칸 한 칸 올려주기도 하고, 내 짐도 다 들어주고...

네가 남자였다면 난 그날의 너한테 반하고도 남았을 거야.


허름한 집을 보여주기 싫어서 10년 넘게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집을 너한테 처음 보여준 날. 부끄러워하는 날 뒤로한 채 너는 우리 집 벽에 다리를 올리며 TV를 켜더라. 누구를 데려와본 적이 없어서 마땅한 간식도 없었고, 쭈뼛거리며 삶아놓은 옥수수를 건네었지. 그런데 넌 자기 시골집에 와있는 기분이라며, 참 야무지게도 먹었어. 남김없이 말이야.


그리고 너한테 남자 친구가 생긴 날.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남자 친구가 본인을 구분해 내지 못했다며, 우린 쌍둥이라고. 사투리가 약간 섞인 너의 말투로 '쌍댕이'란 우리만의 단어가 생겼지.(물론 우리의 쌍댕이는 성인이 된 후 너의 금전적인 투자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던 날 너는 돌연 학교를 옮겼어. 그때도 참 많이 아쉬워했었지. 그래도 우리에게는 앞으로 같이 할 날들이 많으니 간간히 너의 안부를 묻고, 또 만나고... 몸은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달려와주던 너였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 너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그런 너를 종종 찾아가며 우리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지. 내가 처음 바(Bar)에 가본 것도, 클럽에 간 것도 생각해보니 다 너와 함께했더라.


고지식하고 놀 줄 몰랐던 나한테 너는 말 그대로 자유의 여신이랄까? 그런 네가 난 언제나 부러웠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와 달리, 있는 그대로 표출하던 네가 나한텐 '사이다'같은 존재랄까? 내가 화나서 얼굴이 빨개져 있으면, 넌 내 옆에서 온갖 욕을 하며 나보다 더 화를 내곤 했잖아. 그런 널 말리며 난 되려 화를 추스르고, 그게 우리만의 일상이었지.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가끔 네가 화나 있을 땐 같이 길을 걷는 게 무섭기도 했어. 당장 싸움이라도 날 거 같아서. 내가 너랑 친구여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니 말이야.



 간간히 만남을 이어왔던 20살 초반과 다르게, 나의 대학생활과 첫 직장생활을 정리했을 무렵. 그때가 26살이었지? 우린 그때부터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자주 연락하고, 만났어.


그때 난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고, 그런 날 티 나지 않게 걱정해주던 너였어. 갑자기 "너 스트레스받으면 말해! 내가 더 주의할게! 넌 스트레스받으면 절대 안 돼!"라는 말만 했을 뿐. 그 당시 너도 직장에서 밤 낮 없는 야근에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말이야.


밤샘 작업으로 집에 가서 씻고 오라며 주어진 4~5시간의 시간을 넌 나와 노는 게 더 힘이 난다고 했어.

그때 우리가 처음 같이 봤던 영화 '미녀와 야수' 기억해? 영등포 CGV, 엄청 큰 영화관에서 봤잖아. 힘들게 일하고 왔을 널 위해 내가 편안한 자리로 예매해놨던 거야. 내 뜻을 정확하게 파악한 너는 코를 골면서 참 잘도 자더라. 어찌나 안쓰럽고 고맙던지.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여행했던 제주도. 바쁜 일상에 지친 너의 기분을 풀기 위해 '힐링 여행'을 계획해서 갑자기 떠났었지? 거기서도 넌 내 보디가드 역할을 하며, 밤길에 내 손을 꼭 잡고 다녔던 게 또렷이 생각난다. 3일간 붙어있으면서 깔깔거리던 너의 깨방정 웃음소리도.


그거 알아? 그 당시 무지막지하게 외로웠던 내 옆에서 넌 계속 남자 친구 얘기만 했던 거. 그래서 난 '괜히 왔나?'라고 생각했었어. 이건 좀 네가 봐줘. 너의 남자 친구한테 질투해서 그랬을 테니까.


그런데 나중에 너의 친구들한테 들으니 너는 제주도 여행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더라. 너무 여유롭게 잘 다녀왔다고. 행복했다고. 기집애. 나도 너의 남자 친구만 빼면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어.


그래도 고마워. 넌 남자 친구랑 있으면서도 내 전화는 꼭 받아줬잖아. 밤 산책을 좋아하는 내가 아무 때나 전화해도 웃으면서 받아주고, 남자 친구랑 있으니 어서 끊으라는 내 말에 "상관없어, 하던 말 계속 해"하는 너의 결단력. 넌 정말 남자로 태어나서 내 옆에 있었어야 해. (지금 우리 오빠가 이 글을 본다면 질투하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추석 연휴 끝나면 얼굴 보자고 명절 안부를 주고받았지. 너와의 만남을 약속하고 시골에 다녀오던 날. 그러니까 추석 연휴가 끝나가던 날. 다른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너와 친한 친구가 내 전화번호를 갑자기 묻는다면서 알려줘도 되겠냐고.


그때 심장이 철렁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네가 또 잠수를 탔나? 하고 말이야. 가족들과 헤어지고 혼자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갈 때 그 친구한테 전화를 해봤어. 그런데 친구가 이상하게 뜸을 들이더라. 왜 그러냐고 네가 잠수를 탄 거냐며, 얼른 말하라고 다그치니까 말하더라.



네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이야.

추모공원에 가면 널 만날 수 있다고.



 말이 돼? 연휴 끝나면 보자던 네가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과 다리가 심하게 떨려서 운전을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 믿을 수가 없었어.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단 게 맞는 표현이겠지. 당장이라도 너한테 달려가 무슨 장난을 이렇게 심하게 하냐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어.


너 알지? 나 소주 한잔에도 홍당무처럼 얼굴이 닳아 올라 취하는 거. 근데 있잖아 너 얘기를 듣고 안주도 없이 술만 연달아 마셨어. 마음이 너무 쓰려서인지 술은 오히려 달게 잘만 들어가더라. 얼른 잠들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이었단 듯이 아무렇지 않아질까 봐 무리해서 마셔봤어.


그런데 아니었어.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훌쩍이며 길을 걷고 있었고, 정신이 돌아오면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어. 또 정신이 돌아왔더니 부모님 앞에서 방바닥을 치며 울고 있더라.


그 늦은 시간에 난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부모님한테 온갖 때를 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 연휴 끝나면 보자던 네가 하늘나라에 있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면서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그 당시에 나도 오래 먹던 약의 부작용으로 우울증 아닌 우울증을 앓고 있었잖아. 그래서 부모님 눈에 내가 너무나 불안해 보였나 봐. 내가 마치 너의 옆으로 갈 것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네가 있는 곳으로 갔던 날. 그곳에서 넌 환하게 웃는 사진으로 날 맞이하더라. 그런 널 보는데 난 너무 화가 났어.


나쁜 년, 못돼 처먹은 년, 넌 내가 죽어서 너한테 가면 가만 안 둘 거야. 네가 날 두고 어딜 가? 나한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라면서 이런 곳에 날 오게 해? 너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아.


널 처음 보자마자 너한테 쏟아낸 말들이야. 이젠 익숙하지? 너 보러 갈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잖아. 미안하지만 아직도 널 처음 보면 욕이 제일 먼저 나와. 오늘은 이쁜 말만 해야지~ 하다가도 그게 잘 안되더라. 네가 아직 용서가 안 되나 봐.


올해도 너한테 가서 한참을 욕하고, 또 한참을 울며 꼴 보기 싫다고 이만 집에 가겠다고 했지. 그런데 그때 너한테 붙어있던 꽃들이 갑자기 내 발 밑으로 툭 떨어졌어. 나보고 욕 좀 작작하고 울지 말라는 너의 뜻인가? 하고, 처음 너 앞에서 웃음이 나더라.



 그런데 나, 너를 그렇게 잃고 난 후, 그 누구와도 친하단 말을 쓸 수 없게 돼버렸어. 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 너도 그래 줬으면 하고 바라 왔어. 그런데 네가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때, 나한테 왜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외로웠던 순간에 너한텐 내가 왜 떠오르지 않았을까?


네가 원망스럽더라.


나한테 전화 한 통만 해줬더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널 말릴 수 있었을 텐데. 술 한잔 하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웃어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너였다면 너한테 전화해 울기라도 했었을 텐데. 넌 어떻게 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친하단 게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내 온갖 아픔을 같이 나눠갖던 너였는데, 너의 아픔을 난 왜 모르고 있었던 걸까?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어.

 

그래서 네가 하늘나라로 간 이후,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난 어느 순간 친한 친구는 없다고 말하게 되더라.


또 잃을까 봐 무서워서인지. 나 혼자만의 착각일 거라 말할 자신이 없는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네가 화나면 주체가 안 되는 성격이라고 그 성격 좀 고치고 싶다고 할 때, 같이 명상 학원이라도 다녔어야 했나?


아니면 그전에 할 일이 많아 해외직구로 잠이 안 오게 하는 약을 먹는다고 말했을 때, 더 강하게 뜯어말렸어야 했나? 그런 약은 누가 봐도 위험하잖아.


아니면 네가 미용일을 배우고 싶다고 도구 사게 돈을 좀 빌려줄 수 없겠냐고 했을 때 빌려줬으면.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난 아직도 그게 후회가 돼. 왜 그때였을까.


1년만 뒤에 내가 취업을 하고 정말 빌려줄 수 있었을 때, 그때였다면 맹세코 너한테 내 월급통장도 넘겨줬을 거야. 그랬다면 넌 다른 삶으로 또 다른 선택으로 아직도 내 옆에 있지 않았을까?


책임감이 유독 강했던 너여서. 언니와 형부, 조카, 시골에 계신 할머니까지 챙기면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도맡아 했지. 낮에는 회사일로 밤에는 알바로 너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나는 감히 상상도 안돼.

 


 그리고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 작가가 꿈이라면서 너에 대한 글은 너무 늦게 쓰게 되었어. 내가 책을 낸다면 사재기라도 했을 너인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처럼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SNS에라도 글을 남겨볼까 했는데, SNS는 유행 따라 없어지기도 하잖아. 그런데 널 그리워하는 내 마음은 없어질 거 같지가 않았어. 그래서 그런 곳에 섣불리 또 가볍게 써지지가 않더라. 그리고 짧게 몇 마디 쓰기에는 너에 대한 내 마음, 감정을 줄이는 것도 버거웠어.



 있잖아. 나 사실 아직도 너의 기일을 외우지 못했어.

아직도 부정을 하는 건지. 이상하게 너의 기일은 몇 번을 봐도 외워지지가 않더라.


잘 보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데 난 널 아직 보내기가 싫은가 봐.


20대의 끝자락에 요즘 유독 네가 많이 떠올랐어. 매일 밤 하는 산책도 너와 통화를 하지 못하니 너무 지루했고, 깔깔 거리며 웃던 너의 웃음소리가 없으니 외롭더라.


내 쌍댕아. 고등학교 때부터 똥 손인 날 대신해 항상 내 머릴 만져주던 너였잖아. 제주도에서도 약 부작용으로 듬성듬성 빠진 머리들에 볼륨을 넣어주겠다며, 너의 화장보다 내 머리에 더 많이 신경 써주던 너였잖아. 결혼식 때 내 헤어, 메이크업도 다 네가 해주기로 했었잖아. 그런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난 아직도 여전히 똥 손이야.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해도 온갖 좋다는 것들을 써봐도 여전히 그래. 그럴 때마다 네가 그리워. 너의 빈자리가 커. 아니 그냥 네가 너무나 생각 나. 그래서 난 그냥 이대로 살아갈래.


네가 생각나면 너와 있었던 추억들을 곱씹을 거야. 네가 미치도록 보고 싶으면 언제나 차를 끌고 너한테 갈 거야.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땐,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 그러니 가끔 꿈에라도 나타나 줄래? 부탁할게.



내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지?

난 널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꼭 그렇게 살 거야.


네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 다 경험해보고, 네가 가보지 못한 곳들 다 다니면서 너와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살아볼게. 난 너와 달리 약속을 잘 지키니까.


너와 내가 함께한 10대와 20대 중반이 지나고, 혼자 지내온 20대 후반이 지나 이제 몇 시간 뒤면 난 30대가 돼. 너는 제일 이쁠 26살의 모습으로 남아있겠지만 난 이렇게 시간 따라 많이 변하겠지. 나중에 나 못 알아보면 안 된다?


너와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하늘에서 응원할 너에 대한 보답으로 또 너의 덕으로 행복하게 지낼게. 나의 그리고 너와 가슴속으로 함께 할 30대도 잘 지켜봐 줘.



내 영원한 쌍댕이 보고 싶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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