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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Oct 20. 2020

유산은 남 얘기인 줄로만 알았지

지난 일기를 마지막으로 난임 일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고 길어졌던 유산 이야기는 쓰고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끝이라고 해놓고ㅋ 다시 끄적끄적 (이 일기는 브런치 북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내가 맞이한 유산은 계류유산이었다. 임신 7주 차. 2주간 깨끗하게 텅 빈 아기집으로 유산 판정을 받았다. 

계류유산 - 임신은 되었으나, 발달 과정의 이상으로 아기집만 있고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사망한 태아가 자궁에 잔류하는 상태


많은 임신부들은 아이가 무사히 바깥세상을 볼 때까지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아이가 생긴 기쁨도 잠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40주를 지내게 되는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유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임신 12주 이내에 발생하는 초기 유산. 때문에 임신을 확인한 기쁨도 잠시, 이 아이가 혹시나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12주를 보내게 된다. 한 번이라도 유산을 경험한 사람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주위에 임신 사실을 비밀로 하는 것은 다 이런 불안감 때문이다. 


나는 임신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었기에 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일까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에 발생하는 또는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무지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지인들의 유산 이야기들에 '아, 저 사람 많이 힘들겠네' 정도의 생각뿐이었으니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그 막연하게 알던 유산이 나에게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러니 임신하고 기뻐서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신나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이 상황이 왔지. 입이 방정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나중에 아이에게 이 일기를 출력해 줄 생각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널 힘들게 낳았다고. 역시 김칫국을 많이 마시면 탈이 난다.


우리나라는 7명 중 한 명이 유산을 경험한다고 한다. 적은 비율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남미 여행에서 4명 중 한 명이 겪는다는 고산증에 당첨이 되더니 7명 중 한 명인 유산에도 당첨이 되었다. 로또는 죽어도 당첨이 안되면서 이런 나쁜 것들은 참 잘도 당첨이 된다. 열 받는다. 




유산은 세 가지로 형태로 진행이 된다. 자연배출, 약물 배출, 소파술


몸이 받는 데미지는 자연배출<약물배출<소파술 순서이다. 이 중 수술이 산모 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임신 주차가 높고 태아 심정지로 유산을 하는 경우에는 긴급 수술을 한다. 죽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오래 있게 되면 자궁 유착이 심해지고 이걸 모른 채 오래 있게 되면 산모까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 


초기에 발생하는 유산은 적은 주차에 발생하기 때문에 가만 둬도 자연배출이 진행되거나 아니면 약을 써서 약물 배출을 진행한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크지 못하고 유산될 때 대부분 출혈이 발생한다. 그래서 임신 초기에 출혈이 발생하면 부리나케 응급실로 뛰는 이유가 바로 유산될까봐다.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 유산방지 주사를 맞으면 유산 진행이 멈추는 경우도 있기에. 


유전자 문제로 유산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배출이 진행이 된다고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인체는 참으로 신비해서 몸 안에 불필요한 물질이 있으면 자동으로 배출을 한다. 착상된 배아에 문제가 있으면 진행되던 임신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아기집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출혈이 있는 경우라면 자연 배출을 기다렸겠지만 내 경우는 출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약물을 쓸지 수술을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이 경우 대부분 소파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수술이 돈이 되니깐 그런다는 말도 있었다. 판단은 각자에게) 그런데 내가 다니는 병원은 나에게 아기집이 작고 하니 약물 배출을 하자고 했다. 사실 거의 한 달 간격으로 용종 수술한다고 수면 마취해, 난자 채취한다고 수면 마취해, 이젠 유산 때문에 또 마취를 해야 하는 줄 알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약으로만 한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 배출과 소파술의 장단점은 뚜렷했다. 


약물 배출 : 몸에 무리가 덜 간다. 잘 끝나면 빠른 시간 안에 임신 시도가 가능하다. 비용이 저렴하다. / 약이 잘 들으면 빨리 끝나지만 약이 안들을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통증이 심할 수 있으며 집에서 유산이 진행이 되기 때문에 혼자 감당해야 한다. 자궁 내에 잔여물이 남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소파술 :  간단하게 30분이면 자궁 내부를 정리할 수 있다. /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회복기를 최소 3개월은 가져야 한다. 수술 중 자궁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비용이 비싸다. 


결국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몸에 무리 안 가게 할 건지, 몸에 무리가 가지만 간단하게 끝낼 건지였다. 약물 배출에 실패해서 수술까지 하는 건 진통 다 하고 제왕 절개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깔끔하게 수술로 결정하는 경우들도 많다고 한다. 




처음 처방 나온 약은 사이토텍이라는 약이었다. 이 약은 위궤양 치료제인데 부작용이 자궁 수축이어서 1급 임산부 금기약물이었다. 이틀간 약을 복용했는데 이 약의 부작용인 배탈만 계속 나타났고 피는 나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왜 약이 안 듣지. 인터넷에 보니깐 이 약 한 알만 먹고도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병원에 다시 간 날 초음파를 보니 아기집은 빈 채로 그대로 있었다. 선생님은 약을 바꾸고 용량을 올려보자고 했다. 두 번째 나온 약은 메틸러라는 약이었는데 이 약은 희귀 의약품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검색 결과조차 잘 나오지 않는 약이었다. 이 약은 그냥 말 그대로 자궁 수축제였다. 지시대로 8시간 간격으로 2알씩 먹었다. 이건 배탈은 나지 않았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아프니까 머리까지 같이 아팠고 먹고 나면 배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저 조그만 노란 알약 두 알을 먹는 게 두려울 지경이었다. 이 약 역시 아주 소량의 출혈만 발생시켰다.

메틸러 정 

이틀 뒤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여전히 빈 아기집은 잘 있었다. 이 와중에 0.2mm 컸다. 와, 자궁수축제를 퍼붓고 있는데 아기집이 약간씩 자라고 있다니. 말 그대로 헐이었다. 선생님은 그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하면 아기집 유전자 검사도 진행한다고 해서 동의서도 다 썼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뭐가 문제인지 검사나 해보자. 


가장 빠른 수술 날짜를 잡고 다시 사이토텍을 용량을 올려서 처방해주셨다. 그래도 수술 전까지 일단 먹어보자고. 아니 무슨 나는 임신도 시험관을 할 정도로 힘들더니 유산도 이렇게 힘든 건가. 나 같은 경우가 있냐고 물었더니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은 사이토텍 한, 두 알로 끝난다고 -_- 약국에도 물어봤더니 한 사람한테 이렇게 많은 자궁 수축제가 처방 나가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중간에 약도 바꾸셨네요? 라며...


혹시 이번 임신에서 아기가 문제없이 잘 컸다면 내 자궁은 막강 자궁이어서 외부의 그 어떤 공격에도 잘 버텼을 거다. 이렇게까지 자궁 수축제를 써대는데도 버티는 걸 보면...


그렇게 용량을 올린 약을 먹고 잠든 새벽, 쥐어짜는 복통에 잠이 깼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배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고 식은땀이 줄줄 났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눈물이 났다. 배가 너무 아프니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자다가 놀라서 깬 남편은 왜 그러냐며 어쩔 줄 몰라했고 나는 어떤 자세로 있어도 배가 너무 아파서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로 헉헉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울다 잠깐 기절한 것 같았는데 뭔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보니 아기집이 나와 있었다. 약물 배출을 하면 아기집을 눈으로 보게 되어 심리적 쇼크가 크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동그랗고 투명한 아기집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고, 슬펐다. 초음파로는 2센티도 안되었는데 크기가 꽤 컸다. 이게 나오려고 그렇게 배가 아팠나 보다.  


병원에 전화해서 아기집이 나왔다고 하니 빨리 오라고 했다. 선생님은 아기집이 나오면 유산은 끝난 것이라고 했다. 많이 아팠을 텐데 고생했다면서. 수술은 취소됐고 초음파 상으로는 여전히 내막이 두꺼운 상태라 내막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려보자고 했다. 추가로 처방된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 카페에는 둘째나 셋째를 계류유산 한 사람들이 올려놓은 유산 경험담들이 있었다. 아기집 나오는 고통이랑 가진통이랑 비슷하다고.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깜짝 놀라며 '너 진짜 아팠겠다'라고 했다. 나는 애를 낳아본 적이 없어서 가진통이 뭔지 몰랐는데 출산한 사람들은 가진통을 겪어봤으니 내 말을 듣고 몸서리치면서 몸조리 잘하라고 했다. 물론 진진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가진통도 장난 아니라며, 유산이 그렇게까지 아프냐면서. 


유산은 출산이랑 비슷하다더니 골반뼈와 척추뼈가 계속 아프고 삐그덕거렸다. 출혈도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엄마는 나보고 절대 찬 물, 찬 음식 먹지 말고 이틀간 머리도 감지 말고 샤워도 하지 말고 미역국만 먹으라고 했다. 맨발로 있지 말고 양말도 신고 있으라면서. 왜 씻지도 말고 더럽게 있으라고 하냐고 했더니 괜히 샤워하고 머리 감다가 찬바람 들면 몸 상하니깐 그냥 이틀간 참으라고 하셨다. 




유산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자꾸자꾸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혹시 나도 모르는 어떤 행동을 해서 그게 유산으로 이어졌을까 봐. 도대체 내가 뭘, 어느 부분에서 잘못해왔던 걸까. 하다못해 배아가 향에 약하다 그랬는데 내가 섬유유연제를 향이 너무 강한 걸 써서 배아가 망가졌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다음 임신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유산한 것도 속상한데 이게 반복될까 봐 두려움에 떨어야 하다니. 이래저래 마음이 슬프고 속상했다. 내 몸으로 하나하나 다 겪고 나니 더 힘들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아기집이 갑자기 떠오른다. 


게다가 남들 한두 알에 끝난다는 자궁수축제를 일주일이나 먹으면서 오만가지 부작용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더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그 병원은 나를 상대로 약물 임상실험을 하냐면서 성질을 냈다. 설마 그랬겠니. 병원에서도 최대한 수술로 안 가려고 그랬을 텐데 그들도 내가 약이 이렇게 안 들을지 몰랐겠지. 


다음에는 꼭 잘될 거라는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무턱대고 공포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아는 사람이 더한다고, 알고 나니 더 걱정이 되는 것을 어쩌나. 이번엔 모르고 당한 일이라 그냥 순간순간 울면서 넘어갔지만 이 절망감과 우울감을 다 알고 나니 다시 이 상황이 벌어지면 못 견딜 것 같았다. 게다가 아기 심장이 멈춰서 유산되면 어떡하나. 빈 집인 상태로 유산되어도 이렇게 슬프고 속상한데 아기 심장소리까지 듣고 잘못되면 정말이지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산을 겪고, 이 아프고 힘든 유산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다들 대단한 것 같다. 그 힘든 일을 겪고 버티고 다시 아기가 찾아올 때까지 시도하고.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아기가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포기하고 다 내려놓으면 아기가 온다고 했다. 아.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바라본다. 이만큼 울었으니 이젠 웃을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짜 난임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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